퇴계는 영남의 퇴계인가 조선의 퇴계인가 - 비판객님의 반론에 답함 



<비판객님의 반론>


비판객님은 영남지역의 유림 내지 학자들의 퇴계학 연구 태도를 서두에서부터 상당한 분량에 걸쳐 혹독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먼저 해당 부분을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래 조사연 님의 글을 읽고 퇴계학에 대한 몇가지 의구심을 남기고자 한다. 아직도 퇴계는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열렬한 숭배(개인적으로는 狂信이라고 생각함)를 받고 있으며 조선성리학의 본격적인 흐름을 열었다는 점에서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퇴계는 천원짜리 지폐의 모델 혹은 국사시간이나 국민윤리 시간에 잠깐 배운 사단칠정논쟁의 당사자-무슨 논쟁인지도 모르지만 하여튼-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유난히 한국철학 연구자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는 퇴계학의 현대적 조명, 현대적 부활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관점을 가진 연구자들의 글을 보면 하나같이 퇴계학의 위대성을 찬양하고 현대적 계승을 소리높여 외치기만 할 뿐 독자로 하여금 전혀 정서적 호응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일단 연구자들의 능력 부족을 들 수 있다. 학문적 수련의 미흡과 연구대상에 대한 객관성의 부족으로 일방적 찬양에만 머물 뿐 왜 퇴계학이 가치가 있고 왜 계승을 해야 하는지 전혀 설득을 못하고 있다. 특히 퇴계학보 같은 경상도 지역의 학술지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 쪽 글들을 보면 퇴계는 주자학을 극복한 독창적 사상가이자 현대 한국사회의 모든 사회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정도로 둔갑한다. 과연 몇 백년전의 인물에 대한 일방적 찬양이 인문학이란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는 건가? 언젠가 한겨레21을 보니 안동지역에서 어느 연구자가 '퇴계학의 계승과 극복'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가 큰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 퇴계학에 극복할 대상이 어디 있냐는 지역 유림, 교수들의 항의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퇴계학의 계승을 주장하는 자들의 상당수는 특정 지역, 특정 당색에 기반한 경우가 많다. 솔직이 나는 퇴계학의 계승같은 주장은 들어봐야 영남 남인의 후예인가 하는 냉소적 반응밖에 나오질 않는다." 


<조사연의 답변>


1. 비판객님의 퇴계와 영남 이해의 문제점 


이 부분을 읽은 저의 소견은 이렇습니다. 
狂信이라는 표현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쨌거나 5백년전의 과거 속의 퇴계를 현대의 변화된 시대에 조응하여 설득력있게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연구자 집단에 대해 각성을 촉구한다는 의미에서는 일단 님의 글은 통렬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는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님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비판객님은 뒤에서 말하기를 "아무리 퇴계학을 생각해봐도 퇴계학의 계승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하고 있는 바, 퇴계학의 현대적 무용성을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님의 입장에서는 오늘날 퇴계를 운위하는 자체가 못마땅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둘째) 님은 경상도 지역이라는 특정 지역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 퇴계학 연구 붐이 마치 특정 지역, 특정 당색(소위 영남 남인)에 한정된 이야기인것 처럼 주장하고 계십니다. 과연 님의 생각대로 퇴계는 주로 특정 지역, 특정 집단 내에서만 관심 사항일까요? 

(셋째) 님은 영남학파 내지 영남 남인에 대해 심정적 거부감을 가지고 계신듯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아마도 은연중 현대사의 정치 집단으로서 TK 그룹과 퇴계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어쩌면 안티-퇴계님은 영남학파에 대해 크게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2.  퇴계학 연구집단에 대한 비판을 위한 전제 - 지적 성실성 


비판객님은 경상도 지역 퇴계학계에 대해 "학문적 수련의 미흡과 연구대상에 대한 객관성의 부족으로 일방적 찬양에만 머물 뿐 왜 퇴계학이 가치가 있고 왜 계승을 해야 하는지 설득력있는 견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타당한 지적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퇴계학계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전통사상학계 일반의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이를 흔히 "문중사학" "족보사학"의 폐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찬양일변도의 문중사학이나 족보사학이라 할지라도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덕분에 여러 묻혀진 전거들이 공개되고 발굴됨으로써 자료적 측면에서 연구가 풍부해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님이 지적하다시피 찬양일변도의 해석이라고 해야겠지요. 님과 같은 류의 지적은 서양철학자들이 동양철학계 일반을 비판할 때 즐겨 부르는 레파토리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해석에 관한한 서양철학계도 문제 있기는 마찬가지인데도 말이지요). 한 예로 다음과 같은 한 서양철학 전공학자의 글을 보기로 하지요. 

"... 이러한 비판은 가령 철학으로 한정하여 말한다면 단지 서양철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소위'우리 것'이라고 주장될 수 있는 동양철학의 경우에도 살아있는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박물관의 유품에 지나지 않는 책 속의 내용들에 대한 주석 작업만을 했을 따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영건, 철학과 문학비평 그비판적 대화", (책세상,2000), 129쪽>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십시요. 
해방 이후 한국인문학계는 서양철학 일변도로 흘러왔음을 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철학=서양철학"이라는 등식이 오랫동안 확고했던 상황에서 지난날 우리 정신사를 주도했던 동양철학,한국철학은 시대의 몰락에 따라 마치 속죄의 주홍글씨를 마빡에 붙이듯 철학이라는 보통명사 앞에 "한국","동양"이라는 말을 접두어처럼 붙이고 이 시대 정신사의 문간방으로 밀려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20세기 현실에서의 동양철학,한국철학 소외의 실례는 서울대 심재룡 교수의 글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83년도에 쓴 글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표적 대학의 대표적 학과라고 할 서울대 철학과의 경우 당시 총원 14명의 교수진 가운데 동양철학(한국철학포함) 전공자는 단 3명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철학하는 자세들, 집문당,1986,320쪽 참조 - 2002년 현재도 사정이 나아진 것은 아닙니다. 총원17명 중 4명). 
이러한 비율에 의해 추산되는 연구 인력으로는 전통사상의 원형을 발굴,복원하는 데에도 벅찬 노릇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석 작업을 넘어 어디 현대적이고 창조적인 해석 작업의 여력이라도 가능했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더구나 유학사상의 경우 망국의 이데올로기라는 멸시와 지탄 속에서, 유학을 연구한다는 자체가 특별한 사명감과 통찰력을 요구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찬양의 문제는 둘째치고 명맥만 유지한 것으로도 그들은 시대적 소명을 다한 것으로 평가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문학계의 구체적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비판객님이 유독 퇴계학계의 연구능력을 문제삼고 비판한다는 것은 모종의 편향된 의식의 소산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하기는 만약 님이 퇴계학에 대한 약간의 애정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퇴계학계에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님의 경우는 "아무리 퇴계학을 생각해봐도 퇴계학의 계승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할 정도로 퇴계학의 현대적 의의를 부정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즉 연구대상(퇴계) 자체가 무의미하다면 연구능력을 문제삼는 것도 우스운 것입니다. 퇴계학이 현대에 계승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야 연구자의 수준과 방법론 기타 여러 논의도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요. 

저는 비판객님께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님은 "아무리 퇴계학을 생각해도"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솔직하게 퇴계학에 대해 얼마나 어떻게 생각해보시고 그런 단정을 내리셨는가요? 
저는 적어도 퇴계학계에 대한 님의 비판적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님이 무엇보다 지적 성실성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님은 퇴계학의 현대적 무용성을 주장하는 점에서 "나는 퇴계보다 칸트가 좋다"라는 말로 한 때 인구에 회자된 계명대 이진우 교수와 같은 부류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제가 저 아래에 이진우 교수의 퇴계관을 논하면서 쓴 글의 한대목을 안티-퇴계님께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전통을 다룬다고 할 때 인문학자는 고고학자에 비유될 수 있다. 
고고학자가 유형(有形)의 전통유적을 다룬다면 좁은 의미의 인문학자는 무형(無形)의 전통사상을 대상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고학자는 처음부터 유적의 내용을 예상하고 유적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다. 진시황릉을 발굴할 때 처음부터 황릉의 내용이 그렇게 장려하리라고 예상했겠는가. 고고학자는 단지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심증만 가지고 발굴을 시도했을 것이다. 인문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된다. 퇴계가 400여 년이나 우리 역사 속에서 논의되어온 만큼 퇴계에겐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예상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퇴계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본격적으로 탐구해 보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전통이 단절되었다는 것은 고고학적으로 말하면 전통이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그 실체도 알지 못하면서 풍문으로만 퇴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수준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물론 이진우 교수 같은 사람은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나는 서양철학전공자이기 때문에 퇴계는 내 소관이 아니다.' 그렇다면 퇴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고고학의 경우 발굴자의 발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