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사람님께


저는 어제 님의 질문에 답하여 "퇴계학의 연구현황과 과제"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보충하는 의미에서 다른 분이 쓰신 같은 주제의 글을 하나 올리겠습니다.
다음은 퇴계학의 대가이신 고려대 윤사순 교수(현 명예교수)가 "오늘의 동양사상""(제6호, 2002년 봄,예문서원간)에 쓰신 글입니다.
글의 전문을 올리기는 무리인 것 같고 해서 마지막 결론 부분을 여기에 올리고자 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퇴계학은 물론 오늘 동양학계 전반의 연구 상황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오늘의 동양사상" 시리즈가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예문서원"을 클릭하시고 주문하시면 과월호를 할인된 가격으로 받아볼 수가 있다고 하는군요. 예문서원은 동양철학 전문출판사입니다. 이 예문서원은 "안동 풍수 기행, 와혈의 땅과 인물"(이완규, 2001년), "안동금계마을 - 천년불패의 땅"(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2000년) 등 안동과 관련한 서적도 여러 권 출간한 바 있습니다. 


"퇴계학 연구 - 한국학의 발전과 함께 한 발자취"


<목차>

1. 시작하는 말
2. 광복 이전 - 퇴계와 그의 사상에 대한 주목
3. 60년대 - 폐허 속에서 석사 논문 산출기로 진입
4. 70년대 - '퇴계학'의 표방과 박사 수준 연구의 개시
5. 80년대 - 연구서의 양산과 퇴계학 국제화의 급진전
6. 90년대 - 연구 실적의 정리 작업 시발
7. 맺는 말 

<맺는말>

퇴계와 그의 사상에 대한 연구의 자취는 아래와 같이 집약된다. 우선 광복 이전에는 주로 퇴계가 한국이 낳은 사상가로서 뛰어난 인물이고 그의 사상 또한 높은 경지에 이른 것임을 역설함으로써 일제의 억압 밑에서 민족의 자긍심을 심는 데에 일조를 하였다. 그렇지만 그 연구 수준은 지성인의 교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한 두 학자의 연구물을 제외하고는 연구다운 연구가 없던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 시기는 퇴계와 그의 사상에 대한 연구의 태생기에 해당한다.

60년대에 들어서 일부 민족의식에 기초한 한국학 전공 학자들의 수효가 점증하고, 폐허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나마 퇴계 사상에 대한 석사논문이라도 나오기 시작한 것은 퇴계 사상 연구에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는 한국학 전반이 학문적 영아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퇴계 사상 연구의 수준도 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국어국문학이나 국사학 등에 비하면 퇴계 사상 연구의 수준은 그 전공학자의 빈곤으로 인하여 열세를 면치 못하였다고 하여야 옳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철학 사상 분야에는 한국의 철학과 사상이 존재하지 않는다(한국 사상 부재론)는 일부 일본인 관학자들의 음모적 조작설의 영향 또한 작용하였음도 간과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70년대는 한국학 전반이 흥성하던 때이므로 퇴계와 그의 사상 연구에 열의가 상승한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풍조 외의 요인도 있었다. 순수한 학구 태도로 연구하던 학자들의 열성과 함께 퇴계와 관련되는 연고지 의식과 후예 의식 등이 그 연구 풍토를 상승시키는데 일조를 하였다. <퇴계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주저치 않았던 곳이 다름아닌 그 후예들의 힘으로 이룬 '퇴계학연구원'이었던 사실은 그 좋은 예이다. 그러한 여건으로 인하여 퇴계 사상을 전공한 당시 학자들은 그 연구가 '가학(家學)'의 성격을 띠지 않도록 하는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80년대에 연구물이 다량 산출된 것은 연구 인력의 증가와 연구의 축적이 낳은 결과이다. 특히 국학을 연구하는 것 자체에 자부심을 가지게 된 시기가 80년대였으므로, 그러한 학계의 풍조가 한국 사상 중 하나의 대표적인 사상인 퇴계 사상 연구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이미 70년대부터 본격화하였던 퇴계 사상의 국제화, 즉 중국을 비롯한 외국 학자들의 연구 참여가 이 시기에 예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음도 국내의 퇴계 사상 연구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작용하였음도 부정할 수 없다. 이 시기에 나온 외국 학자들의 논문 중에는 양질의 논문도 적지 않았음에 유념하여야 한다.

90년대는 퇴계와 그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난숙한 단계에 이른 시기였다. 연구 논문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온 까닭에, 양질의 논문을 선별하여야 했던 사실이 그 점을 짐작케 한다. 사실 당시는 같은 주제와 비슷한 내용의 논문이 남출藍出되는 형편이었고, 퇴계 사상을 연구하는 외국학자의 수 역시 고정된 채 새 학자의 증가를 보기 어려워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이 시기는 퇴계와 그의 사상 연구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시도해보아야 할 단계에 이른 시기였다. 이런 점에서 경북대 퇴계연구소의 <퇴계학연구논총> 간행은 당시의 시의에 적합한 조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 퇴계와 그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시기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여 온 것만은 틀림없다. 그 발전은 곧 한국 사상 연구의 발전이고 한국학의 발전에 속한다. 그러한 점에서 그 연구의 발전은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그의 사상이 외국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되기 시작함으로써 가속화된 '퇴계 사상의 국제화'는 세계 사상에 대한 그의 기여에 해당한다. 그런 뜻에서 퇴계 사상에 대한 연구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 사상에 대한 양질의 연구와 함께 현대적인 의식으로 퇴계 사상을 읽어내는 작업, 즉 그의 사상이 지닌 현대적 의의를 얼마나 잘 밝혀내느냐에 있다. 이 과제의 수행이 결국 그의 사상을 현대 세계 사상의 하나로서, 현대 사회에 진정한 사상적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