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세도정치 시기의 안동김씨와 퇴계와의 관계


퇴계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19세기 세도정치를 주도한 안동김씨 일족들이 퇴계학파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는 것도 한
예입니다.
어느 게시판의 한 논객 분은 저에게 주신 글 속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① "더구나 퇴계의 후예들인 영남학파는 조선말기에 이르러 이 나라의 암적 존재가
아니었던가? 퇴계는 진정으로 한국인의 입장에서 큰 철학을 창조해낼 비전이 없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② "퇴계는 일차적으로 그 자신만의 <앞>과 <옆>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뒤>는 없었습니다. 퇴계가 예상을 했겠습니까? 자기 후예인 영남학파들이 나라를
망치리라는 사실을." 

한국사를 조금만 주의깊게 공부한 사람이라면 세도정치 시기의 안동 김씨들이
퇴계와는 전혀 무관한 집단이라는 걸 알 수 있을텐데, 도대체 어디까지
공부하시다가 만것인지 참으로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사실 위의 인용문 속의
"퇴계"는 모두 "율곡"으로 대체되어야  ①, ②는 올바른 문장이 된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영남학파는 기호학파로).
저의 이야기를 안 믿으시겠다면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기로 하지요.다음은
영남대(현 명지대)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제 3편 속에 나오는
글입니다.

"안동 양반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조선말기에 세도정치를 주도한
안동김씨의 후예로 생각하면서 심하게는 나라를 망친 세도가 후손으로
못마땅해하기도 한다. 특히 신세대들은 따로 설명하기 전에는 당연히 그런줄로
알며, 나 역시 10여년 전에는 그렇게만 알고 다녔다. 그러나 그건 정말로
오해다.세도 정치를 한 안동 김씨는 본관이 이곳 소산(안동)일뿐 실제로는 서울
장동(壯洞)에 살고 있던‘장동 김씨’였다. 안동 양반들은 오히려 그런 세도
정치의 피해자들이었다.” 
<유홍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3), (창작과 비평사, 1997), 131∼132 쪽>

안동 김씨는 그 족보가 좀 복잡하다고 합니다. 선(先)안동과 후(後)안동이 있고,
그들 시조가 다르다고 하는군요. 그 후안동 김씨도 본래의 안동을 터전으로 하는
일족과 서울을 무대로 하는 일족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16세기에 안동에 살던 후안동 김씨의 일부가 서울 장동에 터를 잡으면서
번성하게 된 가문이 바로 세도정치 시기의 안동 김씨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서울에 터를 잡은 이른바 그 장동 김씨들이 크게 번성하여 "왕비가 셋, 임금의
사위가 둘, 정승이 15명, 판서가 51명, 관찰사가 46명, 시호 받은 이가 49명이나
되는”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것입니다. 그 장동이라는 동네는
북악산·인왕산 자락을 끼고 세가의 저택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송강 정철 등 소위 기호학파 거장들의
저택이었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점이 안동 김씨(장동 김씨)들의 학문 연원을
시사해 준다 하겠습니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지요. 바로
장동 김씨들의 변화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유홍준 교수가 미술사학자로서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그의 말을 못
믿으시겠다면 조선 후기 역사에 정통한 전문학자의 글을 소개하기로 하지요.
한국사를 전공하신 정신문화연구원의 김학수 박사의 글이 바로 그것입니다. 김학수
박사는 계간 "문헌과 해석", 2000년 가을호(통권12호)에서 "17세기의 名家
­壯洞金氏”라는 제목으로 무려 45쪽에 걸쳐 안동 김씨(장동 김씨)의 내력에 대해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글은 장동 김씨를 부정적 측면에서만 쓰고 있지는 않습니다. 장동 김씨가
조선의 역사에 기여한 면도 있음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할 것입니다. 즉
김학수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흔히 안동 김씨 하면‘명문'·'벌열'·'세도정권'이라는 단어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심한 경우에는 안동 김씨를 권력 독점과 부정부패에 따른 망국의 장본인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조선 후기 300년에 걸친 안동 김씨의 정치적 희생과
문화·학술계에 미친 공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마도
이는 19세기 세도정권에 따른 부정적 인식이 너무도 강하게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10쪽).
그러나 어쨌든 이글을 보면 세도정치 시기의 안동 김씨와 퇴계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님이 퇴계와 안동 김씨와의 연관을 악의로 조작해 내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저는 국사편찬위원회에 강력히 요구하고자 합니다.
즉 앞으로 국사책에다가는 19세기 세도정치 시기의 안동 김씨를 서울(장동) 김씨로
표시하자고요. 그래야 님과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안생길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 안동 김씨와의 연관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소위 영남학파가 조선의 정국에서 상당한 주도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조선 후기 역사를 통관해 보건대, 인조반정(1623)이래 250여년간은 거의
서인-노론의 판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쟁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소위 사색
당파라하여 마치 각 붕당들이 대등한 권력을 가지고 주거니 받거니 엎치락
뒤치락한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명학파가 중심이 된 북인정권은
인조반정(1623)으로 일찍부터 꺾여버리고, 퇴계학파 계열인 남인이 정권을 주도한
것은 제2차 예송논쟁(1674, 숙종즉위년) 이후 6년간 그리고 기사환국(1689)이후
5년간 도합 11년간 뿐이었습니다. 남인이 정권을 잡고 있던 불과 11년도 사실은
기호남인이 주도하였고 영남남인들은 들러리에 불과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선시대의 하고 많은 정승 중에 영남 남인으로서 정승 반열에 오른
인물은 임진왜란 당시 서애 유성룡이 거의 유일하고, 후반기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은 소설 "선택"의 주인공 정부인 안동장씨의 셋째아들 갈암 이현일로서 그
직위가 이조판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조선시대의 하고 많은 정승 중에
영남학파의 몫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조선의 멸망에 대해 욕은
바가지로 얻어먹고 말이지요.
퇴계학파는 조선을 통털어 비주류였습니다. 그러므로 퇴계의 후예들이 조선을 망친
주역이라는 님의 비난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영남학파가 조선의 멸망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퇴계의 실천성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여 탄력성있게 계승하지 못하고 퇴계의
관념성만을 계승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세도정치
시기의 안동 김씨의 몫까지 뒤집어쓴다는 것은 영남학파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억울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조선은 그렇다치고 현대사에 와서 영남 정권이 시대를 농단하지 않았느냐고
비약해서 문제삼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박대통령 정권이 퇴계와 관련이 있다는
듯이 말이지요. 하지만 분명히 말할수 있는 것은 박대통령은 지역적 연고로 퇴계를
이용하신 분이지 퇴계의 정신에 공감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박대통령
추종세력은 이를테면 현대판 영남의 훈구파들이지 순수 영남학파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만약 그들이 영남학파의 정신을 이었다면 그 옛날 퇴계와 호남의
선비들(특히 하서 김인후와 고봉 기대승)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잊지않고 있을텐데
어찌 지역갈등 구도나 생산하고 그럴수가 있겠습니까?
또는 이문열-류철균(이인화) 계열은 영남학파의 후예가 아니냐고 따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물론 영남학파 인물들의 핏줄은 이엇는지 모르지요. 하지만
그들이 퇴계의 정신을 이은 사람들이라고는 결코 말할수 없습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그들 류의 인물들은 원님(조상) 덕에 나팔 불고 퇴계 배경으로 광파는
사람들이라고 해야겠지요. 현대판 영남 훈구파들과 영남학파를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적인 예로 진정한 영남학파 사람들은 결코 지역갈등 조장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기는 영남땅에도 영남학파 사람들은 매우 희귀종이라는 이야기가 있긴
합니다.

어쨌든 많은 분들은 퇴계에 대해 자꾸 따지듯이 힐란하지만 퇴계는 과거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퇴계는 21세기 오히려 미래에 있습니다.


이상 조사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