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공민왕을 대망하며 


이케하라 마모루라는 사람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몇년전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을 쓴 일본인 말입니다.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썼다는 그 비장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맞아죽기는 커녕 그
책으로 많은 쓸개빠진 한국인들의 환호를 받았고, 온갖 신문 쪼가리에 얼굴이며
이름이 나오고 텔레비에도 출연하여 각광을 받았으며 또한 의도대로 한몫 왕창
챙기기도 한 그 일본인 말입니다.

그 일본인은 그 책에서 아주 교활하게도 마치 우리의 뒷통수를 치듯 몽고의
고려침략과 오랜 지배(근 백여년)의 역사 사례를 꺼내더니 "역사적으로 한국에
가장 큰 피해를 끼치고 고통을 준 나라가 과연 일본인가?"하고 반문합니다.
그리고서는 그와 대비하여 자신들의 과오를 희석시키는 수작을 부리고 있지요.
그 한 대목을 보기로 합니다.

"요즈음에도 종군 위안부 문제가 나올때마다 많은 사람이 거품을 물고 일본을
비난한다. 그러나 혹시 '호수만복'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몽골 침략 당시
그들에게 몹쓸 짓을 당한 여인이 무척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임금이 커다란
연못을 파고 그 물에 몸을 씻으면 모든 더러움이 사라진다고 선언하여 많은 여인이
새 삶을 살도록 도와주었다. 오죽하면 그랬겠는가?
일본이 36년 동안 한국을 지배하면서 몽골 못지않은 피해를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보수세력 중에는 그 점을 인정하면서도 알본의 한국지배가 한국에
도움을 준 측면도 없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적인 예로 건축 현장이나 심지어 지식 산업의 본산이라는 출판계에는 아직도
일본의 전문 용어가 상당수 남아 있다.이것은 일본의 한국어 말살정책을 논하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일본 기술이 한국 땅에 이식되었고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드웨어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이 닦아놓은 철길로 지금까지 기차가 다니고 있고,
일본이 세워놓은 한강 다리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물론 일본이 한국의
물자를 더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다리를 놓고 도로를 닦은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동기야 어떻든 그 시설물은 여전히 한국의 재산으로 남아 있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몽골은 한국에 피해만 주고 아무 것도 해준게 없지만 일본은
쥐꼬리만큼이라도 긍정적인 면을 남겼다.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일본보다
몽골을 더 미워하고 싫어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몽골을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한국에 준
상처가 작거나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러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 보다는
현재 몽골이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없을 만큼 가난하고 비참하기 때문이다......."
<이케하라 마모루,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쓴 한국 한국인 비판",(중앙
M&B,1999),212쪽>

이케하라 마모루라는 사람은 잔머리가 굉장히 발달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도 잘 모르는 '호수만복'운운하며 몽고지배 사례를 불쑥 꺼내놓아 우리의
뒷통수를 치다니요.
그런데 그 일본인이 간과하고 있는 아주 의미심장한 사실이 있습니다.
즉 고려의 몽고잔재 청산은 공민왕(재위;1531~1374)에 의해 철저하게 이루어졌던
반면에,우리의 경우 일제잔재 청산은 지금까지 하나도 제대로 아루어진게 없다는
사실입니다. 
단적인 예로 몽고에 부역하였던 인물들은 새 시대를 맞이하여 철저히 배제된
반면에 우리의 경우 친일파들은 친일이 오히려 경력으로 간주되어 더욱 우대받고
승승장구 하였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조선의 건국은 과거청산의 결정판의 의미도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정치적으로 해방되었는지는
몰라도 정신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식민지 상태의 연장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
친일파들이 해방이후 "현대판 훈구파"로 전환하여 새시대 우리의 행보를 사사건건
발목잡고 정신문화를 황폐화하여 왔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몽고에 대한 아픈 기억을 잊을 수가 있는 것은 그 교활한
일본인의 주장처럼 몽고가 우리보다 형편없이 못살기 때문이 아니라 고려가
몽고잔재를 철저히 청산했기 때문입니다.
몽고잔재 청산의 시대적 소명을 담당했던 사람, 그가 바로 공민왕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서울대 한영우 교수의 글이 이러한 내용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공민왕은 비록 원나라의 여자를 어머니와 아내로 가지고 있었지만 고려왕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고, 밖으로는 친원반명 정책을 분명히 하고, 안으로는
권문세족을 억압하여 왕권강화와 민생안정을 도모하는 개혁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한영우,다시 찾는 우리 역사,(경세원,1997), 207쪽>

인적(권문세족;친원파),제도적 청산은 물론이요 공민왕은 나아가 정신적이고
근본적인 청산을 위해 새로운 시대정신을 일구어나갈 신진세력(젊은피)을 양성하게
됩니다. 그들이 바로 고려말의 젊은 피들이라 할 이른바 "신흥 사대부"들이라는
것이지요. 조선 건국의 주역 삼봉 정도전은 이 때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시
이와 관련해서도 앞서 한영우 교수의 글을 이어서 보기로 합니다.

"또한 공민왕은 최고 학부인 성균관을 부흥시켜 순수한 유교 교육기관으로
개편하고 이색,정몽주,정도전,박상충, 이숭인, 김구용등 재주있는 인재들로 하여금
성리학을 깊이있게 연구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명망높은 성리학자들이 무더기로
배출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과거제도를 개혁하여 문학보다 정치 경륜이 높은
인재를 발탁하였다. 이 시기에 양성되고 등용된 젊은 관료들이 이른바 '신흥
사대부'로서 뒷날 조선왕조를 정치적으로 혹은 이념적으로 이끌어가는
중심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앞의 책, 208쪽).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조선의 건국은 몽고잔재 청산의 총체적 결정판이었다고 볼
수도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고려의 철저한 몽고잔재 청산 노력에 비한다면 우리는 참 부끄럽다고 해야
합니다. 기간으로 따진다면 불과 1/3밖에 안되는 일제의 찌꺼기도 제대로 청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아니냐 이 말씀인 것입니다.

저는 남명,퇴계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찌 고려를 잊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고려가 위대하다면 그것은 태조 왕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몽고잔재를 청산하고
조선이 태어날 수 있는 씨앗을 뿌렸던 사람, 바로 공민왕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아, 현대판 공민왕은 언제나 우리에게 오시려나... 


<결론>
친일파 옹호론자들의 논조와 이케하라 마모루의 논조가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친일파 옹호론자들의 궤변의 시평에 우리가 놀아날 때마다 이케하라
마모루 같은 사람은 이렇게 비웃고 있겠지요. "쓸개빠진 한국놈들" 하고.


이상 제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사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