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구파와 동서분당


다음은 울산대 손영식 교수가 "사단칠정 논변과 조선 유학의 흐름"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서인과 동인의 이념적 성격을 논하고 있는 대목의 글입니다 (다카하시 도오루 지음,조남호 옮김,"조선의 유학",소나무,1999-의 부록, 384~386쪽). 
손영식 교수는 이글에서 훈구파는 소멸하지 않고 서인으로 변신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 

<훈구-서인> 

성종~선조 시대에 훈구와 사림이 대립했고, 결국 선조 때에 와서 사림이 승리하면서 동인-서인의 분립이 있게 되었다고 보통 말한다. 그러나 훈구파는 소멸된 것이 아니다. 선조대에 와서 훈구파는 새롭게 성리학의 이론과 이념으로 무장한다. 그것이 바로 이이(李珥)부터 시작하는 서인이라 할 수 있다. 이이가 중요한 것은 바로 훈구파의 성격을 바꾸어 놓은 점에 있다. 기존의 훈구파는 쿠데타의 성공에 따른 공훈, 왕의 외척이나 인척이 되어 왕권을 보호하는 것을 그 권력 기반으로 삼았는데, 이이에 와서 하나가 추가되니, 그것이 바로 성리학의 이념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서인에게는 기존의 훈구 척신의 성격이 있지만, 이것보다는 성리학의 언론 정치, 이성 정치라는 이념을 기본적으로 갖는다. 그리고 이 점에서 훈구파의 성격을 바꾸어 놓은 사람이 바로 이이라 할 수 있다. 

이이는 훈구파를 이어받으면서 그 이념으로 정통 성리학을 선택한다. 성리학이란 혁명 혹은 개혁의 이론이 아니라 기존 체제를 수호하는 보수적인 이론이다. 기존의 권력 세력인 훈구 척신으로 보아서는 여러 모로 좋은 셈이다. 정통 사상이니까 명분이 있고, 또한 체제를 수호하는 보수적 이론이므로 좋은 것이다. 


<사림-동인> 

동인은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제자, 서경덕(徐敬德)의 일부 문인 및 전남 남부(鄭介淸 李潑 등)의 지식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이 주로 서울 이외의 지역에 포진하고 있었다. 즉 각 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 지역의 지식인들을 교육시키고 조직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종~선조 시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각 지역에 은거하면서 연구를 했고, 각자 독특한 학설을 완성했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서경덕, 조식, 이황인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주자학에서 벗어났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같은 학설을 가진 것은 아니다. 서경덕은 장재(張載) 소옹(邵雍)의 기(氣) 철학을 선택했던 반면, 이황은 스스로 정통 주자학의 길을 가려 했다. 그러나 사칠 논변에서 보이듯이 그가 리(理)에 자기 운동성을 부여한 것(즉 理發 理動 理到)은 주희의 핵심 사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조식은 이러한 도덕 형이상학의 이론적 탐구를 거부하고 강건한 주체성을 세우려 했다는 점에서 주자 성리학에서 벗어난다. 

이들은 지식인 탄압(士禍)의 직접적인 피해자로서 훈구 척신의 정치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들은 정치의 도덕화, 이성화를 주장한 이상주의자들로서, 훈구 척신의 맥을 이은 서인에 비해서 진보적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그런 기존 권력 구도를 깨고 지방의 세력이 발판을 차지할 근거를 마련해야 했다. 따라서 정치 체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이런 점에서 뒤에 제도 개혁을 주장했던 실학자들이 동인의 맥을 이어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