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회탈과 노무현 당선자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발표되던 날 노무현 당선자가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하회탈을 들고 있는 모습이 텔레비 화면에 잡힌 적이 있지요.
앞으로 노무현 정권이 지향해야 할 바를 생각할 때 이것은 아주 적절한 상징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성패는 이번 선거를 통해서 드러난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이념간의 갈등을 어떻게 조화롭게 풀어나가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회탈의 이미지, 그것은 바로 <대립적 조화성>에 있기 때문이지요.


하회별신굿을 통해 본 안동정신
 

앞에서 저는 "성주풀이"를 통해서 안동정신의 원초적 모습을 무속적 "하늘"과의 관련 속에서 찾고자 하였습니다.
안동지역에서 "하늘"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저는 또 하회탈놀이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고 봅니다. 
...

하회탈춤하면 하회탈 자체의 그 조형미에 사람들은 감탄을 아끼지 않지만, 사실 하회탈놀이의 압권은 그 죽여주는 대사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양반,선비 마당의 한 장면을 보기로 합니다.
다음은 양반,선비가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이하는 박진태 박사의 1988년도 고려대 박사 논문, "하회별신굿탈놀이의 형성과 구조 분석"의 45~46쪽 부분을 인용한 것입니다.)

"양반은 하인인 초랭이를 거느려 권세를 과시하고 선비는 첩인 부네를 거느려 젊음을 내세우며 등장하여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서면 초랭이가 두 사람을 관계지운다.

초랭이: 샌님요. 나온 김에 인사나 하소.
(양반이 선비를 바라보며)
양반: 우리 통성명이나 하시더.
(선비는 양반을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하며)
선비: 예, 그러시더.
(양반과 선비가 그 자리에 앉아 정중하게 초인사를 한다. 이 때 초랭이가 양반의 관이 눌릴 정도로 양반의 머리 앞에 엉덩이를 대고 선비에게 절을 하면서)
초랭이: 니 왔니껴?
(양반은 고개를 들고 성이 나서 부채로 초랭이의 엉덩이를 때린다.)
양반: 액끼 이 놈.
선비: 아니 저 놈 초랭이가 버릇이 없네요.
양반: 암만 갈체도 안되는 걸.
선비: 니 주제에 그래도 이마에 대쪽을 붙이고 사림士林에 출입하나.
양반: 그럼 내가 양반이 아니고 뭐로? 날보다 더한 양반이 있나?
(물러나 까불거리던 초랭이가 양반과 선비의 대화를 기웃거리듯 번갈아 보다가)
초랭이: 지도 인사, 나도 인사, 인사하기 마찬가진데 무슨 상관이 있나?

우리는 여기서 초랭이의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반이나 선비나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사대부 계급에 속하므로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는데, 초랭이의 경망스럽고 불손한 행동 때문에 선비가 양반의 자질을 의문시하고 양반은 이에 응수함으로써 양반과 선비의 대립이 표면화된다.
초랭이는 놀이판에 들어서면서도 양반의 뒷통수를 때리는 시늉을 하여 양반에 대한 반감을 나타내더니 양반과 선비를 통성명시킨다는 구실 아래 싸움을 붙이고 양반과 선비의 권위를 한꺼번에 부정하고 평등의식을 드러낸다.
....
....

초랭이에 의해 양반과 선비가 갈등을 일으키는 대목에 이어서 부네가 양반과 선비 사이를 아양떨며 왔다갔다 하여 질투심을 유발시키고 싸움을 붙인다. 

양반: (화를 벌컥 내면서 선비를 향하여) 자네가 감히 내 앞에서 이럴 수가 있는가?
선비: 그대가 진정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는가?
양반: 아니 그렇다면 자네가 지체가 나만 하단 말인가.
선비: 그러면 자네 지체가 나보다 낫단 말인가.
양반: 암 낫고 말고.
선비: 뭣이 나아? 말해봐.
양반: 나는 사대부의 자손인데...
선비: 뭣이 사대부? 나는 팔대부의 자손일세.
양반: 팔대부는 또 뭐야?
선비: 팔대부는 사대부의 갑절이지.
양반: 우리 할아버지는 문하시중이거던.
선비: 아 문하시중, 그 까짓것 우리 아버지는 문상시대인데.
양반: 문상시대? 그것은 또 뭔가?
선비: 문하보다 문상이 높고, 시중(侍中)보다 시대(侍大)가 더 크다.
양반: 그것 참 별 꼴 다 보겠네.
선비: 지체만 높으면 제일인가.
양반: 그러면 또 뭣이 있단 말인가.
선비: 첫째 학식이 있어야지. 나는 사서삼경을 다 읽었네.
양반: 뭣이 사서삼경? 나는 팔서육경을 다 읽었네.
선비: 도대체 팔서육경이 어디 있으며, 대관절 육경은 뭐야?
초랭이: 나도 아는 육경, 그것도 몰라요? 팔만대장경, 중의 바래경, 봉사 안경, 약국의 길경, 처녀의 월경, 머슴 쇄경.
양반: 이것도 아는 육경을 소위 선비라는 자가 몰라?
선비: (혀를 차며) 우리 피장파장이니, 그러지 말고 부네나 불러 봅시다."

이상의 대사에서 보듯 양반,선비는 완전히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양반,선비는 서민들의 놀림감이 되고 허위와 위선, 무능이 여지없이 폭로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풍자 과정을 보면 다른 탈놀이에서와 달리 "양반,선비 스스로가" 자신의 무지와 허위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양반,선비의 허풍도 우리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런데 하회탈놀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탈놀이의 스폰서가 놀랍게도 그 풍자 대상인 양반,선비들이라는 점입니다.
다음은 안동대 임재해 교수의 글입니다.

"별신굿은 민중들이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세계관에 입각해서 양반들의 세계관을 뒤집어엎지만, 양반들은 별신굿에 드는 경비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양반과 선비를 욕보이는 탈춤을 놀아도 이를 허용해주는 동시에 하인 놈이 양반역을 맡게 되어도 하인이 아닌 양반으로 높이 인정해주는 아량을 보인다."
<임재해, 민속마을 하회여행, 밀알 1994, 301쪽>

자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안동문화의 탁월한 해석자인 안동대학 민속학과 임재해 교수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하회의 문화적 전통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표현한다면 <대립적 조화성>이라 할 수 있다.
대립적인 관계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 역동적 생산성을 지니지만 균형과 조화가 깨지게 되면 편벽된 방향으로 이지러져 소멸되기 쉽다. 그렇다면 하회의 찬란한 문화적 전통들은 대립적인 성격의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서로 역동적으로 작용한 결과 생성,전승된 것이라 할 만 하다.
따라서 우선 하회 마을의 문화적 건강성을 대립적 관계의 조화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임재해, 민속마을 하회여행, 밀알 1994, 299쪽>

임재해 교수는 탈놀이에 나타나는 이러한 <대립적 조화성>을 하회마을 특유의 인문적 전통과 그 자연환경적 요소에서 찾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측면에서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하회탈놀이가 정식명칭 "하회별신굿(河回別神굿)"의 일환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데 먼저 주목하고자 합니다. 즉 단순한 탈놀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무속 행위의 형식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저는 무속적 하늘이라는 초월성에 의해 인간 사회의 대립적 성격들이 해소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별신굿의 진행과정을 보면 이렇다고 합니다.
먼저 別神굿을 하기 전해 섣달 보름의 월례 치성 때 山主의 神意를 묻는 神占에 의한 神託으로 거행여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절차는 降神 - 迎神 - 神遊와 탈놀이 - 送神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임재해 교수도 별신굿을 우리 고래의 전통인 제천의식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회마을의 그 화해의 원천은 바로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양반,선비들은 하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탈놀이는 그 자신들에게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 하는 것입니다. 서민들의 눈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새삼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서민들은 양반,선비등 상류층을 오로지 대립적 존재, 저항의 대상으로만 보기보다는 하늘 아래 양반,상놈 따로 있느냐는 식의 초월적 평등의식과 더불어 현실적 질서 아래에서의 피지배자로서의 처지를 하늘이라는 초월적 정서를 통해서 스스로 해방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안동의 서민들은 당당하였고 지혜로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들은 "하늘"을 빽으로 삼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탈놀이를 하기 전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절차를 거쳤고 그리고 하늘 아래서 마음껏 양반,선비들을 풍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풍자에는 비수와 같은 날카로움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변증법적 화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소위 변증법에선 치고 받고 하는 싸움 끝에 결과적으로 화해가 이루어지지만, 안동 서민들의 풍자는 처음부터 화해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서적 태도는 안동 서민들에게 여유를 가져다 주었으며 삶의 역동성으로 표출되었습니다. 풍자란 결국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옛 안동 사람들은 양반이나 서민들이나 결코 쫀쫀 각박한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안동사람들의 그 역동성이 그대로 현출된 것이 바로 동채싸움(차전놀이)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기도 한 이 안동의 차전놀이는 온 안동서민들이 동서편으로 나누어서 하는 놀이인데, 그 역동성과 장쾌함으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넘치는 생명력을 느끼게 하며 그지없이 신명나게 만드는 놀이 아닙니까?
이런 격렬한 놀이에도 경건함은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글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재목은 본질이 든든해야 하기 때문에 참나무를 사용하는데 가을 추수가 끝나면 산에 가서 적당한 나무를 찾는다. 적당한 재목이 있으면 악귀의 접근을 막기 위하여 왼새끼를 둘러치고 신성을 표시한다.
설을 지낸 다음 山神에게 차전목을 베겠다는 고사를 지낸 후 베어 운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