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계보다 칸트가 좋다"는 견해에 대하여 - "한국 인문학의 서양콤플렉스" (민음사, 1999) 저자의 퇴계관 비판 



- 글의 순서 - 

(1) 이진우 교수의 사유체계의 기본적 문제점 
(2) 이진우 교수의 지적 불성실성(지적태만) 
(3)<이진우 교수의 문제의식>에 문제가 있다. 




(1) 이진우 교수의 사유체계의 기본적 문제점 


아마도 최근 가장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펴고 있는 서양철학 전공학자라고 한다면 계명대 이진우 교수가 그 사람일 것이다. 그는 1988년 8년간의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후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서 왕성한 글쓰기를 해왔고 또한 주목할만한 목소리를 강호의 지성계에 토로하기도 했다. 그의 글 속에서 우리는 오늘 우리의 현실에 대한 고뇌와 바람직한 미래를 향한 그의 인문학적 열정을 읽을 수 있다. 논자 역시 그의 메시지 중 많은 부분 공감하는 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진우 교수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논자가 결코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전통사상에 대한 태도와 관련해서이다. 특히 퇴계에 대한 그의 이해 방식은 이 땅의 인문학자라고 하기엔 그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심히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이진우 교수는 자신이 준거하고 있는 서양철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표현하면서 또한 동시에 자신의 철학스타일을 문제삼는 강호의 여러 논객들에 대한 강한 반론을 담고 있는 책을 펴낸 바 있는데, 그것이 "한국 인문학의 서양 콤플렉스"(민음사, 1999)라는 책이다. 그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일단 그의 사유체계를 보면 그는 사유의 기반을 서양철학에 두고 있음은 명백해 보인다. 즉 "나는 퇴계보다는 칸트를 좋아하고 또 니체를 노자만큼이나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17쪽)고 자신 있게 밝힐 만큼 서양철학에 대하여 확신에 찬 신념을 표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비판적인 목소리에도 단호하다. 예컨대 수입학으로 일관된 주류 인문학계의 식민성을 지적하고 우리의 역사와 전통에 터잡은 자생적 인문학의 건설을 역설하는 주장(김영민, 조한혜정, 조동일, 이승환 교수 등)에 대해, 자신의 서구취향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한 듯 강한 토운으로 반론을 시도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논자가 이 책을 특별히 주목하게 된 것은 그런 논쟁적인 측면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우리 전통사상팀의 대표선수로서 퇴계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퇴계는 주로 서양철학팀의 대표선수로 발탁된 칸트와 더불어 한 세트로 대비되어 출연하고 있다. 그 한 장면을 보기로 한다. 앞서 언급한 김영민, 조한혜정, 조동일, 이승환 교수 등 이른바 "고상한" 지식인들(이진우 교수는 칸트의 언사까지 빌어 그들을 구체적인 이론제시는 없이 말만 앞세우는 "고상한" 지식인들이라고 혹평하고 있다)을 향한 이진우 교수의 신랄한 반문 속에서도 퇴계는 이렇게 등장하고 있다. 
"칸트의 철학은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일고의 가치가 없는 수입학이고, 퇴계의 철학은 우리의 삶과 역사에서 자생하였기 때문에 가치 있는 우리의 인문학인가?"(111쪽) 
과연 이진우 교수는 퇴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일까? 

논자는 우선 이 장면을 두고 생각해 본다. 물론 칸트를 퇴계보다 더 좋아한다는 이진우 교수로서는 자연스런 반문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논자는 이진우 교수가 칸트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칸트도 이진우 교수의 해석에 따라서는 분명 오늘 우리의 문제의식을 위해서 훌륭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진우 교수의 퇴계 이해 방식에 있다. 혹시나 퇴계를 폄하 하면서 까지 자신의 칸트에 대한 선호를 강조하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혐의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그러한 혐의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퇴계를 읽는 대신에 칸트를 읽는 것을 서양 추수주의라는 이름으로 질타하지만, 그들은 칸트가 우리에게는 퇴계만큼이나 가깝고 퇴계는 칸트만큼이나 멀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성계의 식민성과 서양추수주의를 타박하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퇴계를 읽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통사상이 자본주의와 기술문명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읽어내는 데 있어서 별 의미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아마 가장 커다란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는 자본주의와 기술문명이 지배적인 우리의 현실환경을 비판적으로 종합하고 또 스스로 구성해 갈 수 있는 언어와 사상을 우리의 전통으로부터 발전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진우, 한국인문학의 서양콤플렉스, (민음사, 1999), 204∼205쪽> 

위 인용문은 퇴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는 글이 아니다. 이진우 교수는 자신의 서구취향을 합리화하기 위해 퇴계를 단지 글의 배경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즉 위의 인용 속에서 칸트는 "자본주의와 기술문명이 지배적인" 우리의 현실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세련된 면모로 연상되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퇴계는 아무런 메시지도 주지 못하는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몰골로 인식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과연 이진우 교수의 이와 같은 퇴계 이해에는 문제가 없다 할 것인가? 

이진우 교수는 칸트를 위하여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바깥에서 빌려온 외래 학문의 권위에 주눅들 필요는 없지만 그것들을 폄하 할 까닭은 더더군다나 없다"(111쪽). 비슷한 논리로 논자는 퇴계를 위하여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단지 <우리 것> 이어서 친숙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성찰도 해보지 않고 퇴계를 폄하 할 까닭은 더더군다나 없다." 

생각컨대 위 인용문은 적어도 퇴계를 논하는 이진우 교수의 인문정신에는 중대한 흠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첫째는 앞에서 문학평론가 김병익씨의 발언을 통해서도 보았다시피 지식인으로서의 기본적 양심이라 할 지적성실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요, 둘째는 이진우 교수 자신이 인문학의 출발점으로서 강조하고 있는 바 <문제의식> 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진우 교수의 문제의식>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이를 차례로 검토해 보기로 한다. 



(2) 이진우 교수의 지적 불성실성(지적태만) 


퇴계를 말하기 위해서는 퇴계를 알아야하고, 퇴계를 알기 위해서는 일단 퇴계를 읽어야 한다. 그런데 이진우 교수는 위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퇴계를 읽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이 시대에 퇴계가 별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니, 퇴계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즉 퇴계를 읽지도 않으면서) 퇴계가 설득력이 없다고 어떻게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것은 인문학자로서 치명적이라 할 지적불성실의 전형적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하기는 "우리는 퇴계를 읽지 않는다"고 할 때 그 "우리"가 일반대중들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은 있다. 즉 이진우 교수같이 인문학 일선에서 맹활약하는 사람들 조차 퇴계는 별 볼일 없다고 떠벌리는 마당에 대중들이 퇴계에게 가까지 다가갈 리는 만무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문학자의 경우는 다르다. 

전통을 다룬다고 할 때 인문학자는 고고학자에 비유될 수 있다. 고고학자가 유형(有形)의 전통유적을 다룬다면 좁은 의미의 인문학자는 무형(無形)의 전통사상을 대상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고학자는 처음부터 유적의 내용을 예상하고 유적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다. 진시황릉을 발굴할 때 처음부터 황릉의 내용이 그렇게 장려하리라고 예상했겠는가. 고고학자는 단지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심증만 가지고 발굴을 시도했을 것이다. 인문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된다. 퇴계가 400여 년이나 우리 역사 속에서 논의되어온 만큼 퇴계에겐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예상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퇴계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본격적으로 탐구해 보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전통이 단절되었다는 것은 고고학적으로 말하면 전통이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그 실체도 알지 못하면서 풍문으로만 퇴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수준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물론 이진우 교수 같은 사람은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나는 서양철학전공자이기 때문에 퇴계는 내 소관이 아니다." 그렇다면 퇴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고고학의 경우 발굴자의 발굴내용을 참조하듯이, 퇴계학 전공자들의 연구결과를 참조해야 한다. 그 정도의 지적 성실성도 없다면 퇴계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적어도 퇴계에 관한 한 침묵을 지키는 것이 옳다" 더구나 퇴계에 관한 자료는 오늘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원전도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러 말할 필요 없이 아무리 서양철학 전공자라고 하더라도 일단 퇴계를 읽어야 한다. 그래야 퇴계의 메시지가 있는지 없는지 알 것이 아닌가. 

사실 퇴계는 칸트만큼 그리 난해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진우 교수처럼 퇴계를 읽지도 않고 퇴계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사람은 결코 아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퇴계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읽는다는 것인가? 

일차적인 텍스트로 퇴계 자신의 저작과 제자들이 쓴 퇴계언행록 기타 퇴계와 관련된 여러 문헌들을 들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와 더불어 퇴계사유의 근간이 된 성리대전(性理大全), 주자대전(朱子大全), 심경부주(心經附註) 등 성리학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