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과 理氣論 - 일부 서양철학 체계와 비교해서


우리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유교” 그러면 너무나도 자명한 사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용감하게 외치는 사람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교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진 사상도 없을 것입니다. 단순히 책 한두권 읽고서 “이것이 유교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儒道는 千의 얼굴을 가진 문화 현상이다”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경동,문화일보,99년7월17일 참조)
유교는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 내용을 변화해왔으며 또 그와 더불어 특성을 달리해왔습니다. 성리학은 그 다양한 유교의 얼굴 중에서 인상 깊은 한 모습입니다.
일단 성리학에 대한 기본적 정의를 서울대 금장태 교수를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교사상이 중국의 송대에 와서 불교(화엄)와 도교(노장)의 형이상학을 수용하여 유교 경전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형성한 유교철학의 체계를 성리학이라고 한다.”

저는 무엇보다 유교가 이웃사상인 도교와 외래사상인 불교로부터 에너지를 섭취, 새로운 모습으로 도약했다는 사실 자체를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구 사상에서도 빛나는 예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기독교 사상입니다. 팔레스타인의 한 이름없는 지방 종교에 불과했던 원시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도약하게 된 계기는 바로 그리스, 로마사상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단초를 열었고 신플라톤주의와 접목하여 기독교사상을 새롭게 해석한 아우구스티누스(354~430),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의 만남을 통해서 다시 기독교사상을 새롭게 변모시킨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등으로 이어지면서 기독교는 서구정신사를 지배하는 세련된 종교로 발전되어 나갔던 것입니다.

유교사상 역시 불교와 도교와의 만남을 통해서 말라비틀어진 훈고학 스타일을 떨치고 웅대하고 세련된 면모를 갖추면서 중국은 물론 이웃 한반도로, 일본으로, 그리고 베트남으로, 동아시아의 지배적인 사상으로 군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유교가 도교와 불교의 장점을 수용하여 우주론, 인간론, 실천철학을 일관된 원리로 설명하는 논리정연하고 웅대한 사상체계로 발전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리학입니다.

그 선구적 사유를 펼친 사람들이 주돈이(1017~1073), 소옹(1011~1077), 장재(1020~1077), 정호(1032~1085), 정이(1033~1107) 등 이른바 북송5자(北宋五子)들이었고, 이들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웅대하게 체계화한 사람이 바로 南宋의 주희(1130~1200)였습니다. 이론의 체계화에 주희의 공헌이 결정적인 바가 있어서 이 새로운 유학을 “주자학”이라고 이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참고>> 주자학의 성립

남송의 주희(號 회암; 1130~1200)는 북송에서 전개된 새로운 유학을 집대성하여 미증유의 체계를 수립한 사람입니다. 현대의 대표적 신유가의 하 사람인 장군매(1887~1967)는 이러한 주희를 일러 "위대한 종합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구도를 통해서 보면 이러한 주희의 면모가 보다 입체적으로 다가오리리라 생각됩니다.

*주돈이(號 렴계; 1017~1073).............................
-우주론; 태극도설

*소옹(강절; 1011~1077)....................................
-우주론

*장재(횡거; 1020~1077) ...........................................주희(號 회암;1130~1200);理氣論 종합-理중심
-우주론; 氣철학 

*정호(명도; 1032~1085).....................................
-理철학; 육구연, 왕수인에 영향

*정이(이천; 1033~1107).....................................
-理철학; 주희에게 직접적 영향


자 그러면 이러한 사연을 통해서 성립한 성리학은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특히 서구적 사유체계와의 비교를 통해서 성리학의 본질적 특성을 드러내 보이고자 합니다. 

성리학은 기본적으로 우주, 자연과 같은 초월적 질서 만큼이나 인간 자신의 내면의 질서도 동일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구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理氣論에 의해 일관된 원리 속에서 통일적으로 파악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理氣論은 우주론이면서 동시에 인간론이기도 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리학체계는 인간 자신이 그대로 우주적 존재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성리학 체계가 우주론을 강조하는 그 실천적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주적 질서에 연결되는 인간 주체의 조화로운 인격적 질서를 강조함으로써 인간행위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과 자연, 우주를 매개하는 개념이 바로 "理" 개념입니다. 즉 理는 자연계의 법칙임과 동시에 인간세계의 윤리적 규범을 의미한다고 할 것입니다. 천지만물의 운행에 정해진 "이치(理)"가 있는 것과 같이 인간세계에도 지켜야할 "理"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윤리적 규범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보장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논의는 나아가 인간 세계 즉 가정, 사회, 국가, 자연에 대해서도 타당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리학 체계는 궁극적으로 우주적 질서를 내면화하고 이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인격체들로 구성된 “조화로운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조화로운 공동체 사회, 그것을 "대동사회(大同社會)"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대동사회란 理 개념의 사회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쉽게 이야기한다면 성리학이 우주를 논하고 하늘을 논하는 것은 인간 세상이 바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 이렇게 볼 때 성리학의 주요 메시지는 정의롭고 도덕적인 국가, 사회를 지향한다면 그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 자신이 바로 정의와 도덕성을 최고의 가치에 두고 실천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리학적 세계관에서는 특히 역사적 행위를 하는 엘리트들의 도덕성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자연스런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이러한 성리학의 특성은 서구적 사유체계와 비교해보면 보다 분명해집니다.
서구적 사유체계 하에서는 국가, 사회 나아가 神적 질서와 같은 초월적 질서와 인간 주체는 동등한 체계로 포섭될 수 없습니다. 즉 인간에 통용되는 논리와 인간외적 혹은 초월적 질서에 통용되는 논리가 그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라이프니쯔의 예정조화설이나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나 헤겔의 “이성의 奸計(die List der Vernunft)” 등에서 보듯, 인간 주체의 맹목적 행위, 이기적 충동, 권력의지, 동물적 본능 등 인간에게 있어서는 저급한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도 인간외적 질서의 차원 높은 善의 자기실현에 이바지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개인의 주체적 의지나 도덕적, 지적 지향도 초월적 섭리 앞에서는 무기력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처럼 국가전체의 조화로운 질서가 목적이라면 인간 개인은 계급의 일원으로서 국가의 한 구성 부분에 불과하다는 계급정치론도 주장될 수 있습니다. 
헤겔의 예처럼 역사의 진보가 중요한 것이라면 역사의 무대에서 역사의 진보를 위해 활약하는 세계사적 인간(영웅)에게는 “수없이 많은 청순한 꽃들을 짓밟거나 자기들이 앞길에 거추장스럽게 널려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면 가차없이 이를 분쇄”하는 것도 허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논리처럼 “덕의 공화국”을 향해 가는 길에는 “덕성”과 “공포”도 양립할 수가 있게 됩니다.
마키아벨리처럼 여우(간교함)와 사자(용맹성)와 같은 동물의 논리도 거침없이 동원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 볼셰비키처럼 “목적의 왕국”에서는 목적에 충성하는 것이라면 온갖 수단도 용납이 된다는 주장도 가능하게 됩니다,
이러한 서구적 사유체계는 그 사상가들의 본래의 순수한 의도야 어떻든 간에 실제로는 현실의 악을 정당화하고, 독재를 옹호하며, 현실의 모순을 해결한다는 것이 현실을 더욱 처참하게 인도하는 궤변의 논리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성리학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성리학적 세계관에 있어서는 “인간은 일상에서 활동하는 주체이자 우주변화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여 인간은 초월적 존재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동서양 사유체계의 차이는 각기 표상하는 이상적 인간형에 대한 비교에서도 드러납니다.
성리학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형은 “성인(군자)”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내재하는 하늘의 표상(理)을 주체적으로 형상화하고 나아가 그 하늘의 뜻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인은 말을 하는 하늘이요, 하늘은 말이 없는 성인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주목해야 될 것은 모든 사람에게 理가 내재해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결국 성인(군자)이라고 하는 존재는 모든 사람에게 그 가능성이 열려있는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성인(군자)이나 보통사람의 출발점이 동일하기 때문에 성인(군자)은 반드시 “보통 사람 가운데 한사람”이라고 주장됩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하바드 대학의 뚜웨이밍 교수처럼 적절히 지적하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군자는 <모든 사람>이 본성에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이상을 완전하게 구현할 가능성을 타고 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천지와 완전히 합일된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부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