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 - 성인(聖人)이라는 말에 왜 귀(耳)가 들어 있을까? 성인과 귀는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 >

"한자의 원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파자(破字; 한자의 자획을 나누어 살펴보는 방법)이다. '성인'의 한자어 '성聖'을 파자해 보면 '耳+口+王'이 된다. 여기서 '口'가 옛 임금들이 제사지낼 때 쓰던 제기 (祭器)를 의미한다든지 혹은 민중을 뜻하는 人口, 食口 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口'와 '王'의 의미는 쉽게 연결될 수 있다. 성인이라는 글자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사장 혹은 정치적 최고 지도자인 임금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라는 풀이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耳'이다. 왜 성인이라는 말에 귀(耳)가 들어 있을까? 성인과 귀는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우리는 바로 이 점에서 중국 철학에서 말하는 성인의 모습에 대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성'자에서 드러나는 성인이란, '하늘의 명'(天命)에 잘 순응하고 민중의 목소리에 정성껏 귀기울이는 사람 그 자체이다. 여기에서의 성인의 모습은 명쾌한 논리와 온갖 웅변으로써 자신의 말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지자(知者)의 '말함'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열심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현자(賢者)의 '들음'의 모습이다." 
- 김득만·장윤수, 중국 철학의 이해, (예문서원,2000), 17쪽 - 



<퇴계의 "성인"과 플라톤의 "철인", 헤겔의 "영웅"과의 차이> 


성인이라는 개념은 퇴계 뿐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통사회 일반의 이상적 인물을 징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즉 성리학(주자학)의 추상적 성인 개념은 물론, 양명학에서는 "저자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성인이다"라고 할 정도로 대중적인 성인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동학에서도 시천주(侍天主)의 신앙에 의해서 누구나 천주를 마음에 모시면 신분에 관계없이 그 날부터 군자가 된다고 하여 군자 개념을 세속화시켰고(신일철, 동학사상의 이해,사회비평사,1995,94쪽), 백범 또한 백범일지에서 "문화건설의 사명을 달한 민족은 일언이 폐지하면 모두 성인을 만드는 데 있다"고 하여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되는 세계를 꿈꾸었다는 것이지요(김구저, 도진순주해,백범일지,돌베게,1997,432쪽). 

그러나 플라톤의 경우 "모든 사람이 철인이 되는 사회"라든가, 헤겔의 경우 "모든 사람이 영웅이 되는 사회" 같은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꿈꿀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런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철인, 영웅의 개념 징표인 <선의 이데아>, <절대정신>의 구조가 성인의 개념 징표인 <태극=理> 개념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외적으로 이탈리아의 맑시스트 안토니오 그람시는 그의 옥중수고에서 "모든 사람이 철학자이다", "모든 사람이 지식인이다"라고 있는 바 이는 동양적 맥락에서 오히려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서는 이러한 理개념과 이데아, 절대정신의 개념을 중심으로 성인과 철인,영웅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성인과 철인, 영웅의 차이 


성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理氣論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理氣論이란 쉽게 말해서 理와 氣의 개념을 가지고 우주와 자연과 인간과 역사를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理는 무엇이고 氣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주와 세계와 인간이 그러하듯 풍부한 개념이어서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우나 대체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본질적인 것과 현상적인 것 
* 형이상과 형이하 
* 만물을 낳는 근본과 만물을 낳는 자료 

즉 이러한 理와 氣 개념의 조화와 통일에 의해 실체가 형성되고 또한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理와 氣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서 변화무쌍한 이론들이 도출되며 웅대하면서 역동성있는 사유의 세계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또한 理氣論은 우주론이기도 하면서 인간론이기도 하고 우리가 이해하기에 따라서는 풍부한 역사철학적 사고를 전해주기도 하는 사유체계입니다. 

1) 먼저 理氣論의 기본 구도는 인간이 理와 氣 개념을 매개로 해서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니, 그것은 인간이 곧 우주적 존재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神이라든가 이데아, 절대정신 등과의 관련성 속에서 인간을 상대적, 종속적으로 파악하는 서구적 사유체계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의 존엄성을 이보다 더 어찌 웅장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까? 

2) 인간은 내재하는 "하늘"의 속성인 理(性卽理)를 주체적으로 형상화하여 역사적 현실에 참여한다고 하는것이니, 역사 창조의 주체자로서 인간의 의미를 우리는 여기서 파악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체적 인간을 성리학에서는 성인 또는 군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성인은 말을 하는 하늘이요, 하늘은 말이 없는 성인이다." 
한편 이처럼 理개념의 인간적 구현이 성인이라면 이러한 理개념의 사회적 표현을 우리는 대동사회(大同社會)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그럼 성인이란 어떠한 사람인가? 
理 개념의 의미구조를 검토해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플라톤의 "철인"의 개념 징표인 이데아와 헤겔의 "영웅"의 개념 징표인 절대정신과 비교해 보면 그 의미구조가 선명히 인식될 것입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선의 이데아"는 하늘의 태양처럼 오로지 초월적인 개념입니다. 그 "선의 이데아"를 통찰한 사람을 철인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동굴의 비유에서 보듯 모든 사람이 동굴을 탈출해서 태양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플라톤의 구도에 의할 때 이데아는 오로지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이 통찰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플라톤의 철인은 선민(選民) 개념입니다. 

헤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정신의 계시는 "이성의 奸計"(die List der Vernunft)에 의해서 오로지 영웅에게만 내려집니다. 그러므로 영웅 역시 선민(選民)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반면 理 개념은 "天卽理요 性卽理이다"라는 말에서 보듯 초월적이며 동시에 인간 내재적 개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입니까? 
理를 체현한 사람이 성인이라 할 때, 理가 인간 내재적 개념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성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소수의 선택된 인간만이 철인 또는 영웅이 될 수 있는 플라톤과 헤겔의 맥락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4) 한편 이러한 理 개념을 통해서 플라톤이나 헤겔 마르크스 등 서양의 사유 구조에서는 결코 발견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원리 하나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바로 敬입니다. 

敬은 理 개념의 존재 양식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됩니다. 
理는 "天卽理"라 하여 초월적인 동시에 "性卽理"라 하여 인간 내재적인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그 초월(天)과 내재(人)를 잇는 논리적인 다리를 우리는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성리학은 불완전한 사상일 것입니다. 그 초월-내재를 잇는 논리적인 통로가 바로 敬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敬은, 
첫째 하늘과 인간을 통합시키는 天人合一의 통합의 원리, 
둘째 인간 주체의 측면에서 볼 때 하늘의 이상을 지향하는 실천윤리, 
셋째 자신의 본성이 하늘에 닿아 있음(즉 天命=性)을 자각하고 이를 스스로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주체성의 원리입니다. 

이러한 실천윤리는 플라톤의 철인이나 헤겔의 영웅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즉 철인은 "거짓말을 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플라톤의 "국가론",최현옮김,집문당,1999,112쪽 참조), 헤겔의 영웅은 절대정신의 계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무도한 수단도 허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헤겔의 "역사 속의 이성",임석진 역,지식산업사,1994,147쪽 참조). 아아 앵코뤼띠블, 절대로 부패하지 않는 청렴결백한 자 로베스피에르,불과 사십 몇일만에 기천명의 사람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한 로베스피에르의 논리는 어디에서 왔겠습니까? 
성인의 논리 속에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게 바로 敬의 실천 윤리입니다. 


(2) 정리 - 성인과 철인, 영웅의 구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 


1) 이처럼 理와 敬을 개념 징표로 하는 퇴계의 성인(성학십도에 나타난 바)과 플라톤의 철인, 헤겔의 영웅은 그 리더쉽의 성격면에서도 극명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퇴계의 성인은 철인,영웅과 달리 선택된 소수의 인간이 아니요, 우리 모두에게 그 가능성이 열려있는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정치적인 태도 역시 대조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즉 철인, 영웅의 경우 오로지 자신들만이 이데아를 통찰할 수 있다거나 절대정신의 계시를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나를 따르라>라는 식의 강제 구도를 보이게 된다면, 퇴계의 성인의 경우는 우리 모두에게 理가 내재해 있다고 믿고 있으므로 강제와 달리 설득에 의한 자발적 참여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퇴계의 성인은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함께 가자>. 

2) 당연한 것이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는 언론의 존재 여부입니다. 철인과 영웅은 이데아의 통찰이나 절대정신의 계시를 독점하고 있으므로 언론은 불필요 합니다. 
만약 형식상으로 언론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철인 영웅의 정책 홍보 수단에 불과할 뿐입니다. 
일사분란함, 그것이 그들 리더쉽의 특징입니다. 

한편 모든 인간들이 내재하는 理의 계기를 통해서 자신의 주체적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므로, 즉 다른 말로 공동체 현실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있고 시시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