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사회(大同社會)와 유토피아 


성리학을 비판하는 우리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성리학은 그저 공리공담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理氣論이니 우주론이니 하는 형이상학적 담론에 혐의를 두고서 하는 이야기같습니다. 
하지만 성리학의 우주론에는 간과할 수 없는 실천적 의미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과 사회 이론에 대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논리적 전제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대동사회란 이러한 우주론의 "사회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주적 질서와 연결되는 조화로운 공동체 질서, 바로 그것이 대동사회의 성리학적 의미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리학은 단순한 공리공담이 아니라 대동사회를 지향하는 실천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의 글에서 理를 체현한 사람이 "성인"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理 개념은 인간과 사회, 우주를 관통하는 개념이라고 할 때 바로 대동사회는 <理 개념의 사회적 표현>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성리학의 이상적 인간 성인(군자)은 바로 이러한 대동사회의 구현을 위하여 현실적으로 노력 실천하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대동사회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까요? 
"예기(禮記)"의 예운(禮運)편에는 대동사회의 모습이 이렇게 그려져 있습니다. 

"대도(大道)가 시행되는 시대에는 천하를 만인의 공유물로 생각하고, 덕과 재능이 있는 자를 선출하여 정치를 맡겨 신의를 강구하고 화목을 닦도록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어버이만을 어버이로 친애하지 않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친애하지 아니하며, 사회의 노인들로 하여금 편안히 여생을 마칠 수 있게 하고, 젊은이로 하여금 충분히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고, 어린이로 하여금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하며,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없는 외로운 늙은이 나쁜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모두 부양될 수 있도록 한다. 남자는 각각 일정한 직분이 있고, 여자는 모두 시집가서 가정을 꾸린다. 재화는 그것이 땅바닥에 함부로 버려지는 것을 방치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한사람의 수중에 들도록 해서도 안된다. 힘이 자신에게서 발휘되기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자신만을 위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음모는 닫혀서 일어나지 않고, 절도와 난적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문을 닫아 걸지 않고 안심하고 생활하니, 이것을 대동(大同)의 세계라 한다." 

이 대동사회에 대응하는, 서구적 사유체계 속에서의 이상사회가 바로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대동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서구의 대표적 유토피아 사상가가 그리고 있는 이상향의 모습도 함께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칼 마르크스(1818~1883)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묘사한 미래사회의 모습입니다. 

"아무도 하나의 배타적인 활동 영역을 갖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그가 원하는 분야에서 자신을 수양할 수가 있다. 그리고 사회가 생산 전반을 통제하게 되므로 각 개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오늘은 이 일을, 내일은 저 일을, 즉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 때는 소를 몰며,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을 하면서 그러면서도 사냥꾼으로도 어부로도 목동으로도 비평가로도 되지 않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그림 자체만 놓고 볼 때 위 두 그림은 본질적으로 비슷한 종류의 그림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림이 그려진 정신사적 배경까지 염두에 두게 된다면 두 그림은 우리에게 상당히 대조적인 면들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성리학과 서구적 사유체계의 본질적인 차이에서 연유한다고 저는 봅니다. 

(첫째)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유토피아가 실존한 적이 없는 "미래에 실현되어야 할 사회"라고 한다면 대동사회는 과거에 이미 실현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성리학의 세계에서는 중국 고대(삼대)에서 그러한 이상이 실현된 적이 있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서구적 사유체계는 "진보적"이요, 성리학적 사유는 "복고적"이라고 단순화시켜 말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터무니없는 사고의 천박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각컨대 이러한 차이는 상당히 깊은 상징적 함의를 담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고대에 그러한 사회가 정말 존재했는지를 우리는 실증적으로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신화에 불과할지라도 대동사회에 대한 관념은 다음과 같은 특별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상사회라는 것이 저멀리 역사의 끝 아득한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 속에 실존했던 적이 있고 따라서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다시 일굴 수 있는 사회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구적 사유체계에 비추어 볼 때 인간정신을 신뢰하는 긍정적 세계관의 한 표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모든 변화가 멈추어버린 완전무결한 이상사회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원초적 맥박이 숨쉬는 조화로운 공동체사회에 대한 이상을 담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아니 생각해보십시요. 우리의 정암 조광조가 내건 플랑카드가 바로 "삼대의 이상을 실현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암 조광조가 급진적이라는 이야기는 있어도 복고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둘째) 유토피아에 대한 논의는 이상사회를 주제로 한 것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전체적이며 외적 객관적 질서에 대한 청사진이 중심에 있을 뿐, 그를 구성하는 인간의 문제는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지 않습니다. 
반면 성리학의 대동사회론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격체"들로 구성된 조화로운 공동체사회를 대동사회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서구적 사유체계에서는 유토피아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의 윤리, 실천윤리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인민들에 대한 거짓말도 용납이 되는 철인의 독재가 주장되기도 하고, "덕의 공화국"을 이상사회로 생각한 로베스피에르의 경우에는 공포정치의 논리도 당당하게 합리화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 볼셰비키의 경우에는 유토피아를 향해 가는 길에 전략과 전술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수단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리학에서는 대동사회에 대한 청사진 못지않게 그 실천윤리도 양쪽의 날개처럼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敬의 윤리입니다. 
우리는 이 敬의 윤리를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지향하는 개인적 인격 수양의 원리로만 알고 있지만 성리학의 세계에서는 개인(己)이 단절된 개인이 아니라 가정 사회 국가 자연 우주에 연결된 개인임을 이해할 때, 이러한 敬의 윤리는 개인적 인격수양의 원리를 넘어 사회적 실천윤리로서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할 것입니다. 
성리학에서(특히 퇴계-남명) 이 敬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목표나 이상 못지 않게 절차 과정의 순수성 도덕성도 중요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일찍이 칼 포퍼(1902~1994)는 이 유토피아주의를 "닫힌사회"의 대표적 징표의 하나로 거론하였으며, 최근 뉴욕주립대의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 역시 이 유토피아주의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아는 모든 유토피아의 진짜 문제는 지금까지 어디에도 존재한 적이 없다는 점 뿐만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그리고 또다른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승에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천상의 꿈이라는 점이다. 유토피아는 종교적 기능이 있으며, 때로는 정치적인 동원을 위해 활요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유토피아는 반발에 부딪히게 되는 경향이 있다. 
유토피아는 환상을 길러내며,따라서 필연적으로 환멸을 낳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토피아는 끔찍스러운 잘못들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고, 실제로 이용되기도 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바는 또다른 유토피아적 전망이 아니다." 
<월러스틴,백영경역,"유토피스틱스",(창작과비평사,1999),11~12쪽> 


<<참고>> 대동사회와 유토피아 비교 


.............................."대동사회".............."유토피아" 


(1) 예(例)....................예기(禮記)...........마르크스의 독일이데올로기 

(2) 실존여부.............과거에 존재(요순시대)......"결코 오지 않는 미래" 

(3) 세계관 ...............긍정적 세계관............부정적 세계관 

(4) 주역......................성인(군자)............철인,영웅,프롤레타리아 

(5) 인간의 문제...............인격공동체..................X 

(6) 실천윤리.....................敬........................X 

(7) 칼 포퍼의 분류기준......<열린사회>의 이상.........<닫힌사회>의 이상 



이상 조사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