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사회의 혁명 - 칼 포퍼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듯 "혁명" 하면 손사래부터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아마도 폭력과 유혈, 혼란이 수반되기 마련인 서구적 혁명 개념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제가 말하는 혁명 개념은 서구적 혁명 개념이 아닙니다. 

저는 앞의 글(진보 개념의 허구성)에서 역사를 "현실의 변화(氣)와 그에 관계하는 인간 정신(理)의 대응 내지 궤적"이라고 본다고 하였습니다. 
현실의 흐름이 왜곡되거나 잘못되어 간다고 판단할 때, 그 흐름을 확 바꾸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또 사실 그러해 왔습니다. 그 근본적인 변혁 그것을 저는 혁명이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혁명이야 말로 가장 인간적인 행위"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역사는 영원한 것이고 따라서 혁명도 영원한 것입니다. 
그만큼 저는 인간 주체의 의지를 강조하는 입장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서양의 플라톤이나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의 경우에는 인간 주체는 "이데아"라든가 "절대정신", 그리고 "경제법칙" 등 인간 외적인 또는 초월적인 개념에 오로지 종속적입니다. 즉 플라톤의 철인은 이데아의 계시에, 헤겔의 세계사적 인간(영웅)은 절대정신의 奸計(die List der Vernunft)에, 마르크스의 프로레타리아는 경제결정론에 따라 역사적 행위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동일한 혁명 개념을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식 혁명 개념과는 그 논리 구성을 달리 한다고 할 것입니다. 

저는 앞의 글에서 칼 포퍼의 개념을 원용하여 서구적 혁명 개념을 "닫힌 사회의" 혁명이라고 할 때 제가 추구하는 혁명 개념을 이렇게 이름하고 있습니다. 

"열린 사회의 혁명" 

그럼 그 구체적인 내용을 칼 포퍼의 이론과 대비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제 글의 목차를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1)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의 경우 
(2) 칼 포퍼의 열린 사회의 대안,점진적 사회공학과 그 한계 
(3) 성리학의 경우 - 열린 사회의 논리 
(4) 열린 사회의 혁명 
(5) 結- 열린사회 혁명의 가능성 



(1)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의 경우 


칼 포퍼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형을 열린 사회라 규정합니다.그리고 그 대표적인 특징을 "비판을 허용하는 자유 사회"라고 설명합니다. 반면 닫힌 사회는 마술적 금기와 독단이 지배하는 억압 사회라고 규정합니다. 
그러한 억압사회의 논리를 제공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로 칼 포퍼는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를 들면서 그들을 이른바 열린 사회의 공적 3거두로 지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칼 포퍼는 닫힌 사회의 역사철학을 "역사주의"라고 명명하면서 비판의 초점을 주로 여기에 맞추고 있습니다. 역사주의란 한마디로 역사가 필연적인 역사법칙에 따라 전개되어 간다는 주장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역사주의의 주요 특징으로서 두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1) 유토피아주의 
2) 역사적 결정론 

이 역사주의는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바,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는 역사의 神을 예정하는 소위 진보론자들의 주장 바로 그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역사주의를 택하게 되면 우리는 불가피하게 닫힌 사회 속에 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역사주의는 유기체적인 전체론에 기초하여 개인을 도구화하며, 거역할 수 없는 역사법칙이라는 것을 인간에게 덮어씌움으로써 인간의 이성을 무력화하고 인간을 운명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칼 포퍼는 특히 서구적 유토피아주의의 오류를 다음 두 가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것은 소수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지배를 요구하기 때문에 독재로 흐르기 쉽다는 것과, 
둘째로 최초의 청사진을 설계한 사람들에게는 이상 상태로 보였던 것이 그들의 후계자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류가 시사하는 메시지는 무엇이겠습니까? 

생각컨대, 역사란 순수한 의미에서 변화 그 자체라고 한다면 결국 닫힌 사회 내부에서는 변화가 아주 경직되게 진행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인(플라톤)이나,영웅(헤겔) 또는 지배계급(마르크스)의 독단적 프로그램에 의해 시대가 운영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유연한 변화 개념으로서 개혁의 형이상학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그러므로 닫힌 사회에서는 오로지 독재(철인,영웅,계급)-혁명(또다른 철인,영웅,계급에 의한)-독재-혁명의 연속으로 그 변화를 설명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칼 포퍼는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 등의 사유체계가 안고있는 이러한 어두운 측면들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서 "열린 사회"의 논리를 제시합니다. 
즉 칼 포퍼는 닫힌사회의 역사주의 입장과 달리 역사를 자유로운 창조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야말로 우리는 진정 이성과 자유에 기초한 열린 사회를 지향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힙니다. 

성균관대 이한구 교수는 칼 포퍼의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론을 검토하면서 열린 사회를 위한 바람직한 역사의식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즉 역사를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답에 도달했다. 
역사의 주체는 절대정신이나 보이지 않는 운명 같은 신비적 힘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개인들이며 역사의 방향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결단을 내리고 어떻게 실천하는가에 달려 있다. 어떠한 유형의 역사적 결정론도 어떤 형태의 인간 부재의 역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 역사의 방향과 목적은 우리 자신들에 의해서만 부여될 뿐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역사의 창조를 위임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주체적인 창조자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우리는 역사를 어떤 방향에로 창조해 나가야 할 것인가?>하는 물음으로 바뀌어지지않으면 안된다." 
<이한구, 역사주의와 역사철학,문학과 지성사,1993, 9~10쪽> 

칼 포퍼의 열린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확보된 사회이며,개인이 그의 이성에 입각해서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회라는 것이지요. 이 때 자유란 다수와 의견을 달리하고 자기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인간 진보의 원천으로서의 자유이며, 권리란 자신의 지배자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로서 규정된다는 것입니다 (이한구, 242~246쪽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칼 포퍼의 열린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개념 징표들을 열거하자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즉, 인간의 존엄성,주체성, 공존, 관용, 비판정신 등등... 
그러면서 포퍼는 열린사회의 운영 원리로서 점진적 사회공학이라는 걸 제시합니다. 
그럼 다음에서는 이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2) 열린사회의 대안 - 점진적 사회공학과 그 한계 


칼 포퍼는 플라톤,헤겔 마르크스 등 열린 사회의 적들에 대한 톨렬한 비판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그들을 극복하고 열린 사회로의 지향으로 나설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칼 포퍼가 열린 사회의 구체적 대안의 원리로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점진적 사회공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여기서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서구 정신사의 대가들에 대한 그의 공격적 비판정신에도 불구하고 그 대안이라는 것이 저에겐 무척 싱겁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용두사미라고나 할까. 그러나 어쨌든 저는 일단 칼 포퍼의 주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칼 포퍼는 이른바 점진적 사회공학을 통해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추구하기 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혁명적인 방식은 부정하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러니까 점진적 사회공학이란 자연과학의 법칙과 유사한 사회과학적 법칙이나 가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러한 과학적 법칙이 설명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사회적 현상을 파악하고 통제,조정할 것을 제안한다는 것이지요. 
생각컨데 이 점진적 사회공학은 닫힌 사회의 논리에 비교해 볼 때 두가지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사회공학적 방식이라는 것이 역사 주체의 의지와 기획을 특별히 중시한다는 점에서 역사 전개에 있어서 인간 정신의 창조적 역할을 고려하지 않는 역사적 결정론(역사주의)과 마땅히 대립되기 마련이며, 

둘째,점진적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벽한 청사진에 기초하여 사회를 한꺼번에 와장창 변혁시키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사회공학과 대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점진적 사회공학은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류의 역사주의와 유토피아주의의 환상과 무모함을 동시에 극복하고자 하는 대안으로 칼 포퍼가 제시하고 있는 것이지요. 
요컨대 무언가 새롭고도 획기적인 환경 여건을 이루어낸답시고 터무니없는 황당한 계획과 이론을 세워 그 객관적인 안전도와 타당성을 도외한 채 의욕만 앞세워 어떻게든 새 집을 지어 보려고 하느니 지금의 여건에서 확실하게 진단되는 문제점을 확실하게 짚어서 고쳐나가는 게 낫다는 것이 칼 포퍼의 생각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점진적 사회공학의 관점에서는 이른바 역사주의자들이 말하는 사회변혁적 목적과 그 합리성이란 것이 공학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도외시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목적과 관련하여 사회공학자들의 할 일이란 다만 그 목적들이 상호 양립가능한 것인지 실현가능한 것인지만을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