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앞의 글 "퇴계(3); 일부 서양철학 전공학자들의 동양철학관 비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무릇 인문학도라면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로서 "지적 성실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여기 그 지적 성실성을 결여한 대표적 사례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다 아시다시피 몇년전 인문학 불황의 시대에 소위 베스트 셀러로서 화제의 선풍을 일으켰던 책입니다. 
이 책이 화제가 되었을 때 다수의 서양철학 전공자들도 이 책의 메시지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던 것을 저는 기억합니다. 
저는 아래에서 서양철학 전공학자인 K 선생님께 드리는 형식으로 이 책의 지적 불성실성을 비판하고자 합니다. 



지적 불성실의 극치 ;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비판 
- K 선생님께 


선생님께서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바다출판사, 1999) 라는 책과 저자를 긍정적 맥락에서 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즉 "사회적 맥락에서" 이 시대에 상당히 의미 있는 책이라고 보고 계신 것 같다는 것이지요. 
그 책이 주는 사회적 메시지 자체는 저도 긍정적인 측면에서 인정합니다. 온갖 말폐적 현상들이 "전통"이라는 탈을 쓰고 시대의 건전한 운행을 방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메시지 말입니다. 

그러나 한편 저는 선생님과 달리 "인문학적 맥락에서" 그 책의 의미를 검토해 봅니다. 인문학적 맥락에서 볼 때 그 책은 매우 심각한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보통 심각한 정도가 아니지요. 오히려 사회적 맥락에서의 긍정적인 부분을 상쇄하고 남음이 있을 정도로 갈 데까지 간 황폐한 인문정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문학적 의미에서 이 책은 한 마디로 "순 엉터리"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의 인문적 현실이 총체적 수렁에 빠져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것입니다. 이 책과 이 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저간의 여러 현상들을 검토해 볼 때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가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걸 저는 절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럼 저는 이 책을 그렇게 혹독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첫째는,이 책의 저자가 바로 인문학자(중문학) 라는 점입니다. 
즉 저자는 인문학자로서의 기본적 양심이라 할 "지적 성실성"을 내팽개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책 내용의 문제입니다. 이 책의 표제로 보아서는 공자와 유학을 주로 비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공자와 유학에 대한 왜곡된 시선도 문제이지만 그것은 전체 내용상 부분에 불과합니다. 사실 이 책의 주 타깃은 우리 역사(조선시대)를 완전히 난도질하는 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보면 일본의 역사왜곡 우리가 욕할 일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셋째는 이 책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읍니다만 이 책을 둘러싼 출판사의 상업주의, 언론의 호들갑, 지식인들의 부화뇌동과 직무유기(무책임), 다수 대중들의 멋모르고 놀아남 등이 총체적으로 보여준 우리 시대 서글픈 인문적 풍경 때문입니다. 
그럼 이상의 이유들 중에서 첫번째 측면과 관련하여 이 책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집중 검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저자의 지적 불성실에 대하여" 

지식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본 조건은 "지적 성실성"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주장을 하고 어떤 이념을 가지고 있는가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책의 저자는 그가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썼건 간에 지적 불성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으로서 인문학자로서의 기본양심을 결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식인이 전공 외의 주제를 다룰 때에는 적어도 그 주제의 전공학자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학문하는 자로서의 기본 예의입니다. 그는 중문학, 그 중에서도 고대 갑골문자학이 그의 전공이라 합니다. 그는 공자와 유학(그리고 조선시대 역사)에 대한 글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아닙니다. K 선생님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만약 선생님의 전공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면서(선생님이 유일하게 그 분야 논문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선생님의 논문도 읽지 않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맥락을 이유로" 마음대로 재단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실 것인가요? 그래도 사회적 맥락에서 용인해 주실 건가요? 

그런데 그 저자의 경우 그러한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그 책 총 300여페이지, 페이지마다 곳곳에 오류 가득찬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그 방대한 조선시대 500년을 한 권의 책에 다루면서 조선시대 역사 전공자들의 저서·논문 한 편 읽지 않고 우리 역사를 난도질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조선시대 역사가 만만하다 해도 그 불성실한 학자가 마음껏 침을 뱉을 수 있을 정도로 형편없는 역사는 아닙니다. 

아마도 그의 전공으로 보아서는 "갑골문을 통해서 본 공자의 모습" 정도가 타당한 주제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전공을 넘어 철학을 논하고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럴려면 적어도 바로 이웃한 인문학자들인 동양(한국) 철학 전공교수들과 역사학과(조선시대 전공) 교수들의 저서·논문 몇 편 정도는 읽고 시작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입시준비 하면서 배운 국사지식, "들은 풍월" 수준의 동양철학 지식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대중서이기 때문에 대충 써도 된다고 말씀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대중을 무시하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현대와 같은 대중의 시대, 대중들의 동의가 현실 변화의 필요조건인 시대에 있어 대중서 일수록 지적으로 더욱 성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바로 인문학자들 내부에서도 서로 의사소통이 안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예라 할 것입니다. 전공 영역을 넘어 글쓰는 것은 필요합니다. 진정한 학문의 발전은 전공의 벽을 허무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지적 성실성" 이라는 것입니다. 지적 성실성의 기본 바탕은 상대방의 전공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상대방 전공에 대한 존중은 소극적·적극적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소극적 존중은 타 전공 주제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읽지도 않았다면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최소한의 지적 성실성 입니다. 
2)적극적 존중은 남의 글을 열심히 읽고, 그리고 인용도 하고 동의하기도 하고 혹독히 비판하기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정한 학문의 발전은 바로 적극적 존중이 바탕이 된 지적 성실성을 모든 인문학자들이 체현하게 될 때 온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저자는 적극적 지적 성실성은커녕 최소한의 지적 성실성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저자 식으로 한다면 우리 학문제도에서 "전공"이란 게 왜 필요한 지 의문스럽기만 한 것입니다. 

"지적 성실성은 지식인의 기본적 양심이다" 라고 하는 말은 제가 처음 쓰는 말은 아닙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씨가 월간 "말"지 (97년 4월)와의 대담 난에서 소위 진보파 지식인들을 향해서 했던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모든 지식인들의 학문 활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김병익씨의 말을 여기 인용하겠습니다. 

"이념적 순결성은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는 거죠. 저는 지식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적 순결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적 성실성'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지성인의 양심입니다." 
<김병익, "지식인에게 중요한 것은 순결성이 아니라 성실성", (말, 97년 4월), 29쪽> 

"지적 성실성"은 비판 행위에도 적용된다고 봅니다. 그것은 즉 무릇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비판 대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적어도 비판 대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비판은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비판이 될 수 없습니다. 

한편 학문의 세계에서 "지적 성실성"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왜 중요한 지를 이런 비유를 통해서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법관이 재판하는 과정을 보면 크게 두 단계로 진행됨을 알 수 있습니다. 1)요건심사와 2)본안심사 단계입니다. 먼저 요건심사는 심판 대상의 형식적 자격을 심사하는 단계로서, 그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야 법관은 그 내용에 따라 승소냐 패소하는 심판을 내립니다. 다시 말하면 요건 심사를 통과하여야만 내용에 대한 판단인 본안심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형식적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승소할 내용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각하처분(폐기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지적 성실성은 바로 인문학에 있어서 1단계 과정에 해당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선생님이 말하는 "사회적 맥락에서의 의미" 같은 것은 본안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논리적인 모순을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선생님은 이렇게 저에게 말씀하셨지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잘못 이해하고 계시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이는 님의 말대로 '동양철학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가 아닙니다. 이는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해야겠죠." 말하자면 선생님은 내용여부에 관계없이 페기처분 되어야 할 사안에 대해 굉장히 의미 있는 것이라고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기는 뭐 이러한 오류는 선생님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지식인들이 TV에 나와 찬반 토론을 하고, 신문은 대서특필하고, 출판사는 희희낙낙하고 한 마디로 생난리를 쳤던 것 아닙니까? 내용여부에 관계없이 쓰레기통에 던져져야 할 책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