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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민속이야기 - 두운대사와 희방사에 얽힌 이야기
 

 

                                                                                                                                                                                                                                                                                                                                                              

1. 희방사

희방사는 경북 영주시풍기읍 수철리에 있는 사찰로 희방사 역에서 동북쪽으로 4km 정도 되는 소백산 기슭 해발 850m에 사찰입니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두운대사가 세운 것으로 전합니다.
 중앙선 희방사역에서 동북쪽으로 약 4km 떨어진 소백산 기슭에 자리한 희방폭포는 소백산맥의 연화봉(1,383m)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데, 높이 28m로 내륙지방에서 가장 큰 폭포입니다. 폭포가 떨어지는 계곡엔 숲과 그늘과 바위덩어리가 펼쳐져 있으며 폭포 바로 위에는 희방사가 있습니다.

 

2. 희방사 건립에 대한 이야기

지금부터 1,300년 전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두운대사(杜雲大師)는 태백산 신원암이란 암자에서 수도를 하다가 지금 희방사가 있는 소백산으로 자리를 옮겨 초막을 짓고 수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초막이 있는 산기슭은 숲이 우거질 대로 우거져 낮에도 무시무시하였고,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었으며 무서운 산짐승들이 마구 쏘다니는 곳이었습니다.

눈보라가 몹시 치는 어느 겨울날, 오직 수도에 여념이 없는 대사 앞에 암범 한 마리가 찾아와 괴로워하는 눈치를 보였으므로 대사가 자세히 살펴보니 산기(産氣)가 임박해 있으므로 부엌에 검불을 깔아 새끼를 낳게 해 주었습니다. 범은 새끼를 두 마리를 낳았고, 대사는 어린애처럼 거두어 주었습니다. 눈이 녹기 시작하는 초봄이 되자 범은 새끼를 데리고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 저녁 문밖에 기척이 있어 내다보니 그 범이 와서 얼굴을 찡그리고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무엇을 호소하는 듯하였습니다. 대사는 반가이 맞이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어서 입을 벌려 보아라." 하면서 입안을 살펴보니 목구멍에 커다란 은비녀가 걸려있지 않는가? 이것을 본 대사는 크게 꾸짖으며 "너 같은 날랜 짐승이 무엇이 먹을 것이 없어 이런 못된 짓을 하느냐? 두 번 다시 이런 것을 먹지 말라."고 타이르니 범은 사과하듯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번에는 문밖에 쿵하는 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그 범이 멧돼지 한 마리를 갖다 놓고 대사에게 드리려는 눈치였습니다. 대사는 자기가 입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것인 줄 알았지만 "내가 술과 고기를 금하는 것을 너도 잘 알고 있으면서 어찌 이런 부정한 물건을 가져왔느냐? 이런 짓을 하려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말라."고 야단을 쳤더니 범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다시 며칠이 지난 어느 달 밝은 깊은 밤에 범이 또 찾아와서 문을 흔들었습니다. 대사가 문을 열자 장삼을 물고 당기므로 따라가 보았더니 앞산 큰 바위 밑에 혼수상태에 빠진 한 처녀가 누워 있지 않는가! 자세히 살펴보니 18, 9세쯤에 녹의홍상을 곱게 단장한 절색의 처녀였습니다. 대사는 급히 그 처녀를 초막으로 옮기고 물을 끓여 먹이며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습니다. 이윽고 처녀가 정신을 차려 연유를 물은 즉 "저는 경주 계림에 사는 호장(戶長) 유석(兪碩)의 무남독녀로서 오늘 결혼식을 치른 후 저녁에 막 신방에 들어가려는 찰라, 불덩이 같은 것이 몸에 부딪치더니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낀 후에는 어떻게 된지 모르겠사옵니다."고 하였습니다.

며칠 조리를 하고 대사는 처녀에게 남복을 입혀 총각처럼 꾸미고 경주로 갔습니다. 딸을 잃고 온 집안이 머리 푼 초상집 같았으나 죽은 줄 알았던 딸이 다시 살아오니 온 집안이 기쁨의 울음바다로 변하였습니다. 딸의 이야기 들은 호장은 대사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이런 말씀드리기는 죄송하오나 대사님은 딸의 목숨을 살려 준 은인이니 불민한 것이오나 거두어 인연을 맺게 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라고 은근히 사위되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대사는 "나는 이미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산중에 들어가 수도하는 몸이요, 이미 따님과는 남매의 인연을 맺었으니 그런 당치도 않는 말씀을 하지 말아 주시오."하고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호장은 대사의 수도생활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고 큰 절을 지어 주기로 결심하고 "이곳은 신라의 훌륭한 문화의 지취와 고적이 많으니 한 3개월 동안 조용히 순례하면서 유해 주시오."하며 간청을 하자 대사도 순순히 응했습니다.

3 개월이 지난 어느 화창한 봄날에 호장과 대사는 나귀를 타고 풍기 소백산으로 향했습니다. 아! 그런데 어이된 일이가? 연화봉으로 가는 길은 큰 길로 닦아져 있고, 동구 밖 여울에는 쇠다리까지 놓여 있으며 초막은 없어지고 큰 법당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들이 즐비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호장이 대사를 위해 선물을 내린 것입니다.

 절 이름은 전 가족에게 기쁨을 주었기에 희방사(喜方寺)
 아래 다리는 수철교(水鐵橋)
 풍기 서문 밖에 놓은 다리는 유다리

유 호장은 대사와의 인연을 길이 기념하가 위하여 도솔봉 아래 조그마한 암자를 지어 유석사(兪碩寺)라고 하고, 백여 두락을 사서 공양미를 드리게 했다고 합니다.

※ 이 이야기는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 박장영님은 현재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에서 학예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2010-08-12 오전 10:03:03 / 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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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2 오전 1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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