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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이야기 -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 선생의 혼을 좇아
평산 신씨 판사공파 종택
 

대구가 고향인지라 어릴 적부터 팔공산을 지척에 두고 산과 들에 있는 오래된 사찰이나 유적지를 대하며 살아왔다. 자연히 대구 지묘동 소재 신숭겸장군 유적지를 수시로 돌아보게 되었고 몇 해 전 드라마를 통해 주군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치는 장면에선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충의를 살신성인의 몸으로 보여준 장군의 후예가 사는 종가를 취재하는 것에 대해 약간 흥분하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평산 신씨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벽상공신 삼중대광 태사에 오른 신숭겸(申崇謙)이다. 그의 초명은 능산으로 태봉의 기장으로 있다가 918년 배현경(裵玄慶), 홍유(洪濡), 복지겸(卜智謙) 등과 더불어 궁예(弓?)를 폐하고 왕건을 추대해 고려가 창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고려개국원훈으로 대장군(大將軍)에 올랐다. 그 후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대신해 장렬히 전사함으로 죽은 현장에 태조가 지묘사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었던 것이다.

판사공파는 신숭겸 장군의 12세손인 문정공(文貞公) 신 현(申 賢)의 손자인 판사공(判事公) 신득청(申得淸:고려말 두문동 72현의 한사람)을 시조로 하고 있다. 신득청은 영해 인량촌에 기거하던 중 신임지화(辛任之禍)로 인해 자?손 양 대가 안동과 원주 등지로 은둔하다가 증손인 지(祉)가 청송군 진보면 합강리(현재는 임하댐 건설로 수몰)로 이거해 살게 되었다.

황금들녘이 펼쳐있고 과수원의 사과가 붉게 익어가는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운데 찾아가는 종가는 이상향의 정점에 있을 듯하다.

청송군 청송읍 소재지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안동방면으로 4㎞지점이며 안동에서 진보면 소재지를 거쳐 청송방면으로 10㎞를 달리면 용전천 너머 소나무 숲이 반기는 마을이 나타난다. 집성촌이 있는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이다.

현재 종가를 지키고 있는 분은 종손의 종조부이신 신두현씨이다. 연속되는 불행과 아이들의 교육 문제로 종손은 대도시로 나가 살고 있어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종가 건물관리까지 모두를 맡고 있는 것이다. 몇 번의 전화통화 끝에 종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는 어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종손인 형이 일찍 돌아가는 바람에 얼결에 도우미 일을 하다 보니 지금까지 흘러 왔다는 것이다. 여러 해 걸친 도난으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울분과 안타까움을 한 번에 표시하는 어른의 표정에서 조상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현실에의 저항이 묻어나온다.

마을에는 경북도 민속자료 제89호인 평산 신씨 판사공파 종택과 경북 민속자료 제101호인 서벽고택(棲碧古宅) 그리고 사남고택이 나란히 자리하며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 초입에는 중평리 솔밭이 보기 좋게 우거져 있으며 그 옆에는 마을 동편 산기슭에 사양서원이 위치하고 있다. 서원 앞은 낙동강 지류 용전천이 흘러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지나는 길손이 쉬어 갈만하다 여겨진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건만 어르신은 가문에 대해 이야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고려 말에 판예빈사 태복판사(判禮賓寺 太僕判事)라는 벼슬을 역임한 신득청(申得淸)을 시조로 고려개국 공신 신숭겸(申崇謙)의 13세손 문정공(文貞公) 신현(申賢)을 중시조(中始祖)로 모시고 있다. 신현은 문장도학(文章道學)이 뛰어나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고려때 문관의 종2품 벼슬)의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신득청의 후손 지(祉)가 언제 어떤 연유로 청송군 진보면에 정착하였는지 알 수는 없다.

지의 후손인 신예남(申禮男) 은 임난(任亂)때 왜적과 싸우다 순직하였으며 그의 부인 민씨(閔氏)도 같은 칼에 죽었는데 나라에서는 공조참판(工曹參判)이란 벼슬에 추증하고 쌍절비각(雙節碑閣)을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예남의 동생 지남은 임진왜란을 맞아 곽재우(郭再祐)장군의 휘하에서 전쟁을 치룬 충절의사(義士)의 집안이다. 임진왜란후 4년 동안 계속 합강 인근에서 살다가 예남의 현손인 신한태(申漢泰)가  중들(현, 중평리)에 이거하면서 지금의 종택을 건립하였다.

선조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계 중 대표적인 것은 과거(科擧)만을 보기 위한 학문에 힘쓰지 말 것이며 신의를 저 버리고 교사(巧詐)하게 남을 사귀지 말 것이며 자기 허물은 덮어두고 남의 단점만을 책하지 말라는 등 청백(淸白)을 위주로 한 교훈을 남겼다. 또 당시의 사대부들이 3대만 제사를 받들었으나 정자(程子) 주자(朱子)의 학설(學說)에 따라 4대의 감실(龕室)을 마련하고 고조(高祖)까지 봉사(奉祀하였다. 이러한 것을 이야기 하는 어르신은 나직하면서도 강단 있고 자랑스럽게 말을 하신다.

잠시 시간을 내어 종택을 안내 하시겠다며 종가 집으로 향한다. 나지막한 연화봉 앞에 위치한 종택은 예전에는 멀리 서쪽으로부터 굽이쳐 흐르는 천이 바라보인다고 했으나 지금은 몇 채의 집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양지바른 곳을 택하여 지은 경관이 아름답고 아늑한 입지적 조건을 갖춘 집이다.



약200년 전에 건립했다는 집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입구자형의 안채와의 사이에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이 마당의 우측에 새 사랑채가 따로 서 있다. 안채 뒤 오른편 언덕위에 사당이 있고 안채 좌측 뒤편에 남향하여 영정각과 서당이 나란히 배치되어 조선시대 사대부 저택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우측에 있는 별채는 선비들이 모여 강론도 하고 시도 읊으면서 소일하던 곳으로 오래되어 새로 중건했다.

종택 뒤 좌측에는 서당이 있는데 기둥은 모두 원주(圓柱)를 이용했고 지붕은 골기와를 이은 팔작지붕으로 후세교육을 위해 지은 정침(正寢)이다. 또 서당 옆 영정각은 지(祉)의 증손인 물촌공(物村公) 신종위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데 효행이 남다른 그는 나라로부터 하사 받은 삼랑관복(三梁冠服)을 착용한 모습이며 신씨 가문의 가보로 전해오고 있다.

본채는 입구자형으로 임진란 후의 건축양식이다. 본채는 별채보다 높게 지어졌으며 중앙에는 중문이 있고 좌우에 대문채와 연이어서 좌측 큰 사랑과 우측 작은 사랑이 있다. 큰사랑 작은 사랑 앞에는 툇마루가 깔려 있으며 사랑방은 각각 정면3칸 측면1칸이다. 앞에서 보면 안채와 연결된 기와지붕의 종마루가 큰사랑과 작은 사랑방 중앙에 각각 위치하고 있어 더욱 이색적이다.

중문을 지나 안채를 들여다보면 사랑과 연결된 좌우측엔 부엌 공간이 있으며 좌측엔 큰 부엌 우측엔 작은 부엌이 있다. 방이 많은 것을 볼 때 옛날 대가족 제도 하에서 여러 형제가 함께 살도록 지어진 집이라 생각된다.

안채는 사랑보다 훨씬 높게 지어졌다. 중앙 3칸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마루좌측에는 안방이 보통방보다 배나 크다. 우측에는 안사랑이 있다. 큰사랑 뒤쪽과 큰 부엌 사이 한 칸의 공간을 두어 중문을 통하지 않고 안에서 자유롭게 내왕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건축하였다. 본채 우측을 돌아 뒤쪽에는 사당이 있고 서편에는 정자가 있는데 이 정자를 서당이라 부른다.

대청은 3칸으로 높은 주추를 세우고 그 위에 하주를 놓아 건물전체를 받치고 있다. 누(樓) 마루의 주위에는 난간(欄干)을 돌렸으며 난간마루는 방의 전면 좌우측까지 연장되었다. 기둥은 모두 원주(圓柱)를 썼으며 지붕은 골기와를 이은 팔작지붕이다.

이집의 구성은 사랑채와 별실을 두어 접대공간을 두고 안채는 좁으면서도 쓸모 있게 배치하여 있어 소박한 선비 생활을 엿 볼 수 있다. 따라서 넓은 마당과 행랑은 생산 공간과 작업공간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찾아 가는 길은 안동에서 일직면과 배방리를 넘어 청송초입에서 진보방향으로 빠져 가는 길(안동서 약 40분)과 진보면을 거쳐 청송으로 방향 잡아 가는 길(안동서 약 50분)이 있다.

가을 냄새 물씬 묻어나는 계절에 아기자기한 산길과 탁 트인 황금들판이 바라보이는 시원한 시골길을 자동차로 달리는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고 옛 선현의 유구한 전통과 깊은 역사가 묻어 있는 종가를 찾아 마음을 다잡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일상에서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번뇌로부터 잠시나마 일탈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글, 사진 강병두 작가


2010-04-14 오전 11:45:26 / 경북미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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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오전 11: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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