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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속이야기 - 황씨 부인당에 전하는 이야기
 

1. 이야기가 전하는 곳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산 일대

2. 전하는 이야기

 조선조 순조 때 영양군 청기면 당동에는 우씨 성을 가진 젊은 청년이 일찍 홀몸이 된 어머니를 모시고 외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러 받은 오두막집과 얼마 되지 않은  땅마지기만으로 농사를 지으며 오직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찬 우씨 청년은 이웃 마을의 평해황씨의 마음씨 고운 처녀와 혼인하고, 외롭게 자라온 지난날을 생각하며 아내를 극진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귀여운 아들과 딸 남매를 낳고 기르면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기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던 아들이 아내와 자식에게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청상과부 시어머니의 시샘은 날이 갈수록 심했지만 남편의 극진한 사랑이 있었기에 온갖 어려움도 참고 살았습니다.
"네 이년! 청상과부 시어머니가 그렇게도 미워 이런 꽁보리밥이냐?"
"머님! 용서하시옵소서. 하필이면 오늘 쌀이 떨어져서 죄를 지었사옵니다. 곧 쌀을 구해서 쌀밥을 올리겠습니다."

이미 미움과 질투로 가득 찬 시어머니의 마음은 며느리의 조그마한 실수도 용서하지 않았고, 온갖 흉계를 꾸며 집안을 망치려는 천년 묵은 여우처럼 보였습니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면 들을수록 시어머니의 구박과 학대가 병적으로 심해져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황씨부인은 차라리 죽어서 저승에서나마 남편과 행복하게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자결의 뜻을 굳혔습니다. 황씨부인은 두 아기를 안은 채 말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꼈습니다.

"불쌍한 우리 아기! 엄마를 용서해 다오. 엄마는 죄가 많아서 어린 너희들을 남겨둔 채 먼저 간다. 그러나 부디 무럭무럭 잘 자라서 불쌍하신 너의 아버지 잘 모셔다오." 하고 철없는 어린 두 남매를 남겨 놓고 황씨부인은 우물가에 가는 것처럼 물동이를 이고 집을 나섰습니다. 우물가에 물동이를 내려놓은 황씨부인은 인적이 드문 일월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나도 황씨부인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남편과 마을 사람들은 여러 날을 헤매었으나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일월산에는 산삼을 캐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하루는 산삼을 캐려고 일월산에 올라가서 자기들이 임시로 지어 놓은 움막에서 잠시 쉬려고 들어가다가 "악!" 하고 놀라 뛰어나왔습니다. 거기엔 어떤 낮선 부인이 목을 매어 죽어 있었습니다. 기겁을 한 그들은 산삼을 캘 엄두가 나지 않아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때 이 마을에 영천이씨 성을 가진 이명준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그날 밤 이 사람 꿈에 그 부인의 혼령이 나타나 다음과 같은 부탁을 했습니다.
"여보시오. 나는 아랫마을 우씨 가문 사람의 아내인데 너무나 한이 많아 죽음을 택했습니다. 우리 남편에게 내 시체를 좀 거두어 달라고 전해 주시오."

그래서 이명존은 아랫마을로 내려가서 남편 우씨를 찾아 현몽에 나타난 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남편은 시어머니의 구박을 못 참아 한 많은 일생을 마친 아내의 유골을 거두어 양지바른 곳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이명존의 꿈에 황씨부인이 다시나타나 "나는 어린 자식을 두고 일찍 목숨을 끊은 죄로 저승에서도 방황하는 혼령이오니 가난한 우리 남편을 대신하여 내 외로운 영혼이 쉴 수 있도록 당사를 세워주시면 한이 없겠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이명존은 황씨부인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당사를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황씨부인당입니다.
 
지금도 일월산 황씨부인당에는 일반인 뿐만 아니라 특히 무속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곳에 내림굿을 하거나 보강굿을 많이 하는 일종의 무속 성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 지금부터 약 600여 년 전 순조 때 청기면 당리에 살던 우씨(禹氏)의 부인 평해 황씨는 남편과 혼인하여 금실 좋게 살았으나 딸만 9명을 낳아 시어머니의 학대가 극심했습니다. 황씨부인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죄책감으로 얼굴을 들고 시어머니와 남편을 대 할 수 없어 아홉째 딸이 젖 뗄 무렵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말았는데, 우씨댁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 무렵 일월산에는 산삼이 많이 났는데, 산삼 캐는 사람이 산삼을 캐려고 자기가 지어 놓은 삼막(蔘幕)에 갔더니, 황씨 부인이 자기의 삼막에 소복단좌(素服端坐)하고 있었습니다. 더럭 겁이 나 되돌아서려는데, 황씨부인이 말을 하기에 자세히 보니 분명 살아 있는 황씨부인이었습니다. 황씨부인은 자기 시어머니와 남편의 안부며 딸의 안부를 묻고는 자기가 여기에 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산삼 캐는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섰으나, 어쩐지 마음이 섬뜩하여 그 길로 산에서 내려와 우씨댁에 가서 그 이야기를 전하였습니다. 금실 좋게 살던 우씨는 부인을 잃고 삶의 재미를 모르고 살던 중 부인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는 곧장 삼막에 가보니, 과연 자기 부인이 앉아 있어, “여보!”하고 달려가 손을 덥석 잡으니 부인은 사라지고 백골과 재만 남았습니다. 남편은 탄식을 하면서 백골을 거두어 장사지냈습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황씨부인의 한을 풀기 위해 그 자리에 당을 지어 주고 ‘황씨부인당'이라 했다고 합니다.

 

◇ 또한 옛날 영양군 일월산 밑에 황씨라는 처녀가 살았습니다. 마을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총각이 둘 있었는데, 그중 몸은 약하지만 마음이 고운 사람을 선택해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혼례를 올린 날 신랑은 뒷간에 갔다가 오는 길에 마치 칼을 들고 자기를 기다리는 듯한 사내의 모습이 신방에 언뜻 비치는 것을 발견하고, 그 길로 타관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신랑이 타관으로 도망친 사실을 모르는 신부는 녹의홍상에 족두리를 쓴 채로 하루 이틀 기다리기를 오 년여 계속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낯선 마을에 정착한 신랑은 머슴살이를 하면서, 그 지방에 있는 처녀에게 새장가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날 때 마다 백일을 채우지 못하고 죽기를 네 번이나 했습니다.

무당을 찾아가 사연을 물어 본즉, 죽은 귀신이 아직도 너를 기다리기 때문에 네 자식은 모두 죽었고, 모두가 사는 방법은 귀신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내는 무당의 말대로 고향의 옛집을 찾아가서 폐가가 된 신방에 들어가 보니 신부는 초야의 모습 그대로 시체가 되어 풀 더미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사내가 툇마루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신부가 나타나 나를 업어다가 일월산 산마루에 앉혀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신부의 부탁대로 하자 죽은 신부는 “이제야 하직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사라졌습니다. 이에 사내는 산에 있으면서 바위를 쪼아 족두리를 쓴 신부 모양의 석상을 만들고, 작은 사당을 지어 조석으로 봉양하다가 돌신부 옆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사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1946년 부산에 살던 한 아낙네가 병에 걸려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한 여자가 나타나, “나는 일월산 황씨부인인데, 나를 파내서 섬기도록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일월산으로 함께 가서 초막을 짓고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발이 닿는 대로 가다가 웅덩이에서 족두리를 쓴 석상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당집을 짓고 석상을 섬겼습니다. 그 이후 아낙네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고, 아울러 황씨 부인당의 영험을 받아서 용한 무당이 되었다고 합니다.

 

※ 이 이야기는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 박장영님은 현재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에서 학예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2010-07-22 오전 9:39:47 / 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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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2 오전 9: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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