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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제와 제시문에 대한 이해 및 분석 능력(2)
 

일반적으로 논술 답안을 채점할 때 해당 답안이 논점에 부합하는가, 부합하지 않는가의 여부는
ㆍ 논제와 제시문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정확한가?

답안은 논제에 대하여 충실하게 기술하고 있는가?

제시문은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가?

라는 평가 항목에 의해 명쾌하게 드러난다.


2008학년도 서울대 논술모의고사에 응시했던 다음 두 학생의 글을 살펴보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논술 답안과 그렇지 못한 논술 답안이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보다 극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북소리 둥둥 울려

     사람 목숨 재촉하네.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도 지려 하는구나,

     황천에는

     주막 한 곳 없다 하니,

     오늘 밤은

     어느 집에 묵고 간담?

     (擊鼓催人命 回頭日欲斜 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

 


<문항 1>
위의 시는 성삼문(成三問)이 죽기 전에 쓴 절명시(絶命詩)이다. 이 시에 나타난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기술하시오. (400자 이내)


이와 같은 문제를 받아 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이 문제는
출제자가  어떠한 의도에서 이 문제를 출제했는가?,
출제자는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적확하게 찾아내야 한다. 


이 문항은
성삼문
의 <절명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감상 능력과 자유로운 사고력을 측정하고자 하는 문제로,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유추하여 400자 이내라는 비교적 짧은 분량으로 기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아래의 학생 답안은 서울대가 문항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공개한 좋은 평가와 그렇지 못한 평가를 받은 복수의 답안이며, 학생들이 작성한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삶과 죽음을 하나의 공간으로 바라보자. 작가는 현재 삶이라는 이정표 속의 공간을 오랜 기간 걸어 왔으며 이제는 죽음이라는 새로운 이정표 앞에 서게 되었다. 길의 시작은 생명의 기운이 솟는 아침과 함께 했지만 길을 걸어오는 동안 아침의 해가 어느새 지려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길의 끝은 죽음이 아니다. 죽음을 넘어서 또 다른 공간이 있기에 작가는 또 걸음을 옮긴다. 문턱을 넘어서 황천에 이르면 아마 그 곳은 쓸쓸함만이 친구가 되어줄 무한한 어둠의 공간이 존재할 것이다.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에게 쉼터가 되어줄 공간조차 없는 그 곳을 향해 가는 것은 해가 뜨고 지는 것과 같은 삶의 순리이다. 작가는 해가 지는, 혼자만이 갈 수 있는 길을 따라 마주하는 또 다른 세계를 향해 걷고 있는 것이다.


이 답안에 대하여 서울대의 모 평가 위원은 다음과 같은 채점평을 썼는데, 매우 주목할 만하다.


시는 논리와 감성이 특수한 형태로 조직된 글이다. 이 답안은 이러한 시 지문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주어진 제시문을 잘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 전체적인 의미를 압축적으로 요약해서 한 손에 잡힐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답안은 시를 쓴 사람이 삶과 죽음을 ‘하나의 공간’으로 보았다고 명료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 ‘공간’이 외적으로 보면 삶과 죽음으로 나뉠지언정 실체적으로는 ‘길’의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지은이의 생각을 아주 잘 드러낸 것이다. 특히 해가 저물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오늘 밤과 내일 일을 걱정하는 화자의 진술을 통해 ‘하나의 공간’, ‘길’의 연속성이라는 주제를 아주 효과적으로 입증해 나가고 있으며, 이는 삶과 죽음을 연속적인 것으로 바라보면서 당면한 죽음을 담담히 수긍하면서도 죽음 이후의 세계가 갖는 쓸쓸한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는 지은이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답안을 써나가는 행위는 무엇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내포한다. 이 답안은 시의 구절들에 일일이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시의 내용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이 원래의 시가 가진 품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처음과 끝이 이음매가 드러나지 않게 보이는 글의 구성도 매우 인상적이다.   


이에 반하여 다음 답안은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제시문에 나타난 시의 상황은 화자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둥둥 울려오는 북소리와 서둘러 지려하는 해는 화자의 가는 ‘목숨’을 재촉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고 잠시 묵을 주막을 찾는 등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는 화자에게 있어 삶이나 죽음보다 중요한 다른 가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당시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 가치란 단종에 대한 충성, 사육신과 생육신의 간절한 마음이 될 것이다.

  ‘오늘 밤은 어디서 묵고 가나’라는 구절에 주목해 보면 죽음 이후에 대한 화자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그는 죽은 이후에도 그의 행보는 계속 될 것이라 생각한다. 즉 죽어서까지도 화자의 충성은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유감스럽지만 이 답안은 앞의 답안이 98점이라는 고득점을 얻은 데 비해 평균점 이하의 저조한 성적에 그친 글이다. 외견상의 분량이나 문장력으로 볼 때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이 답안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이결함은 대다수 학생들이 흔히 범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유형의 문제점이다. 서울대 평가 위원의 채점평에 주목해 보자.

  제시문의 내용과 논제의 요구 사항을 충실히 파악하고 생각한 다음 글을 써야 한다. 이 답안은 시의 주제가 ‘단종에 대한 충성’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의 주제와 다를 뿐 아니라 논제가 요구한 것과도 관련이 없다. 논제는 지은이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 및 사후 세계에 대한 생각을 쓰라고 한 것인데, 답안은 엉뚱하게도 이 시의 주제가 충군 사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은이인 성삼문이 사육신의 한 사람이라는 것만을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생각을 한 쪽으로 밀어붙인 데 원인이 있다. 

  시가 보여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그리고 사후 세계에 대한 생각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 시가 충군 사상을 어떻게 전개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증은 성실히 하려고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답안은 이 시로서는 입증할 수 없는 충군 사상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주막을 찾고 오늘 밤 묵을 일을 걱정한다는 것만을 제시할 뿐이다. 이것이 왜 충군 사상을 표현한 것이 되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이 된다’는 뜻이다. 이 문제를 접한 다수의 학생들은 이 시에 관한 외적 정보 - 성삼문, 사육신, 지조와 절개, 충성심 등 -에 현혹되어 “이 시에 나타난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기술하라”는 논제를 놓치고 말았다. 이 작은 출발선 상의 차이가 채점에 있어서는 0~98점이라는 엄청난 간격을 초래한 것이다.


논술 시험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답안과 그렇지 못한 답안은, 이와 같이 논제와 제시문을 정확하게 파악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 하는 아주 미세한 차이에 의해 극명한 대조를 이루게 된다. 명심하라! 백두의 한 지점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떨어진 빗방울이 동북방으로 튀겨 두만강물이 되고, 서남방으로 튀겨 압록수가 되는 이 어마어마한 간격을…….




2007-09-27 오전 9:47:21 / 김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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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7 오전 9: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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