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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의 뿔 - 제2편 채점 기준
2교시 - 근거의 설정 및 구성 조직 능력
 

2교시 - 근거의 설정 및 구성 조직 능력

논설문과 논술문은 근본적으로 글의 성격이 다르다. 논설문이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여 독자를 설득하는 글이라면 논술문은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증명하여 독자의 이성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이다.

그러나 이 두 글의 차이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은 그리 녹녹치 않다. 그것은 아마도 ‘논설문의 설득의 과정’과 ‘논술문의 이성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과정’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논설문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주장에 독자가 동조하도록 하는 글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이는 독자에게 자기  주장의 타당성과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해 때로는 전문가나 권위자의 견해를 논거로 제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수 대중의 보편적인 정서나 이성에 호소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 이외에도 독자들이 쉽사리 거부할 수 없는 사회적 도덕률이나 시대적 경향성 등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여 자기 주장에 힘을 싣고자 한다.

이에 반하여 논술문은 논제에 대하여 자신의 명확한 의견을 개진하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적절하고 분명한 논거를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아, 그렇구나!”하는 이성적 공감과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상호 소통의 논리적, 이성적 글이다. 그래서 논술문은 창의적이고 치밀한 논증의 과정을 밟아야 하기에 논설문에서와 같은 단선적이고 일방적인 설득의 과정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고 과정과 논리적 기술 과정은 대학교의 전공 공부를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적 능력이기에 대다수 대학들은 논술문의 채점 기준 중 논증력 부문에 30% 내외의 높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논증 능력은 근거의 설정 능력과 구성 조직 능력으로 나누어 평가하는데,  논술문에서 근거의 설정 능력은 다음 네 가지의 평가 기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Δ 주장에 대한 적절하고 분명한 논거 제시 
Δ 주장과 논거의 논리적 타당성
Δ 논제에 대한 분명한 자기 의견 표현  
Δ 자기 의견과 제시문의 연관성

이에 대하여 구성 조직 능력은

Δ 전체 논의 전개의 정합성 및 일관성 유지
Δ 논리적 비약 여부
Δ 글 전체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논의 전개 여부
에 의해 판가름된다.

기본적으로 논술문은 논제에 대한 자신이 견해를 밝히는 글이므로 주장에 대한 적절하고 분명한 논거를 제시해야 독자를 논리적으로 설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주장과 논거 사이에 필수불가결한 인과성 즉 논리적 필연성이 갖추어져야 한다. 물론 이때 견해는 당연히 제시문의 내용과 긴밀한 연관성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제시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럼 논제에 따른 근거의 설정 및 구성 조직 과정에 대하여 좀더 면밀히 살펴보도록 하자.

논제 : 다음 시에 나타난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기술하시오.
 
북소리 둥둥 울려 / 사람 목숨 재촉하네. /
고개 돌려 바라보니 / 해도 지려 하는구나, /
황천에는 / 주막 한 곳 없다 하니, /
오늘 밤은 / 어느 집에 묵고 간담?
(擊鼓催人命 回頭日欲斜 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
- 서울대 논술모의고사 인문계열 나형 1번 문항 

⇒ 이 시는 사육신의 한 명인 성삼문이 쓴 절명시로, 단종의 복위가 발각되어 실패로 돌아간 뒤 죽음을 목전에 둔 자신의 심경을 노래하고 있다. 논술문 작성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이 논제를 파악하고, 이를 풀어나갈 수 있는 논거를 제시문에서 찾아내는 일이므로, 이를 위하여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 시를 이해해야 하고, 이 시의 어떤 내용에 주목해야 하는지 주의할 필요가 있다.
  
① 모진 국문(鞠問)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작가는 들려오는 북소리에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그러나 그는 비록 역도(逆徒)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긴 했지만, 단종의 복위가 왕권의 정당성을 회복하고 국권을 바로세울 수 있다고 믿기에 죽음이 결코 두렵진 않다.

② 겨우 몸을 추스르며 고개를 들어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한다. 순간 그의 눈앞에는 수많은 상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으리라. 사랑하는 가족, 동문수학하던 벗, 대의를 위해 뜻을 함께 했던 동지, 그리고 대의를 위해 당당하게 걸어온 나의 인생.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그는 아마도 이런 생각이 들었겠지. 아! 이제 나의 삶도 저 지는 해처럼 곧 자취 없이 사라지리라.

③ 누가 역도(逆徒)로 생을 마감한 나를 위해 저승 가는 길에 쓸 노잣돈이라도 챙겨줄까? 황천 가는 길에는 잠시 쉬다갈 주막도 없다는데 노잣돈이 없은들 무슨 상관이며, 평생을 청빈하게 살아왔으니 그 돈이 없은들 무에 상관이랴? 이제껏 살아온 길처럼 저승길도 그렇게 욕심 없이 걸어가면 될 터인데. 이 대목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삶과 죽음이 단절된 세계가 아니라 삶의 연장선 위에 죽음의 길이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마치 ‘짜쟌!’ 하며 과거, 현재, 미래를 자유롭게 오고가는 미래공상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에서처럼 삶의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진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삶의 길에서 한 걸음 더 내어걸어 죽음의 길로 공간이동을 한 게지. 모든 것을 훨훨 벗어던져 버리고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 게지.
 
④ 그리하여 이 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마지막 대목이 나올 수 있는 게지. 가장 성삼문다운, 성삼문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성삼문의 성품과 인간미를 가슴 쨘하게 맛볼 수 있는 이 시의 백미. 아! 오늘 밤에는 어느 집에 묵고 가남? 주막 하나 없는 이 쓸쓸한 황천길에서 오늘 밤 묵을 곳을 걱정하는 너무도 소탈하고, 너무도 인간적인 이 고백에 우리는 ‘찌리찌릿’ 감전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시가 주는 감동이며, 문학을 통해 ‘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쁨이다.


제시문을 통하여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Δ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
   - 삶과 죽음의 단절된 공간, 단절된 길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결된 하나 의 길이요, 하나의 공간이다.
   - 나는 삶의 길에서처럼 이 죽음의 길도 주저없이 담담하게 걸어가리라.

Δ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
   - 황천으로 가는 길은 묵어 갈 주막 하나 없는 쓸쓸하고 외로운 길이다.
   - 오늘 밤엔 쓸쓸히 어디에서 묵어야 하나?

이와 같이 제시문과 논제에 대한 분석이 끝났다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순차적으로 풀어나가면 출제자가 요구하는 최적의 논술 답안이 완성될 수 있다. 물론 근거의 설정 및 구성 조직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무시하는 바람에 제시문과 논제를 임의로 재해석하고 변형하여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다.

서울대 논술모의고사에 응시했던 다음 두 학생의 논술 답안을 분석해 보면 그 극명한 차이를 금새 확인할 수 있다.

<예시 답안1>

삶과 죽음을 하나의 공간으로 바라보자. 작가는 현재 삶이라는 이정표 속의 공간을 오랜 기간 걸어 왔으며 이제는 죽음이라는 새로운 이정표 앞에 서게 되었다. 길의 시작은 생명의 기운이 솟는 아침과 함께 했지만 길을 걸어오는 동안 아침의 해가 어느새 지려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길의 끝은 죽음이 아니다. 죽음을 넘어서 또 다른 공간이 있기에 작가는 또 걸음을 옮긴다. ②문턱을 넘어서 황천에 이르면 아마 그 곳은 쓸쓸함만이 친구가 되어줄 무한한 어둠의 공간이 존재할 것이다.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에게 쉼터가 되어줄 공간조차 없는 그 곳을 향해 가는 것은 해가 뜨고 지는 것과 같은 삶의 순리이다. 작가는 해가 지는, 혼자만이 갈 수 있는 길을 따라 마주하는 또 다른 세계를 향해 걷고 있는 것이다.


<분석 및 평가>

ㆍ이 답안은 시를 쓴 사람이 삶과 죽음을 ‘하나의 공간’으로 보았다고 명료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 ‘공간’이 외적으로 보면 삶과 죽음으로 나뉠지언정 실체적으로는 ‘길’의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지은이의 생각을 아주 잘 드러낸 것이다.

ㆍ특히 해가 저물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오늘 밤과 내일 일을 걱정하는 화자의 진술을 통해 ‘하나의 공간’, ‘길’의 연속성이라는 주제를 아주 효과적으로 입증해 나가고 있으며, 이는 삶과 죽음을 연속적인 것으로 바라보면서 당면한 죽음을 담담히 수긍하면서도 죽음 이후의 세계가 갖는 쓸쓸한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는 지은이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ㆍ답안을 써나가는 행위는 무엇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내포한다. 이 답안은 시의 구절들에 일일이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시의 내용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이 원래의 시가 가진 품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처음과 끝이 이음매가 드러나지 않게 보이는 글의 구성도 매우 인상적이다.   


이에 비하여 다음 답안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예시 답안2>

제시문에 나타난 시의 상황은 화자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둥둥 울려오는 북소리와 서둘러 지려하는 해는 화자의 가는 ‘목숨’을 재촉하고 있다. 그런데 ②그는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고 잠시 묵을 주막을 찾는 등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는 화자에게 있어 삶이나 죽음보다 중요한 다른 가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당시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 가치란 단종에 대한 충성, 사육신과 생육신의 간절한 마음이 될 것이다.
‘오늘 밤은 어디서 묵고 가나’라는 구절에 주목해 보면 죽음 이후에 대한 화자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그는 죽은 이후에도 그의 행보는 계속 될 것이라 생각한다. 즉 ③죽어서까지도 화자의 충성은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분석 및 평가>

ㆍ이 문제의 논제는 학생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어떠하며,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어떠한지 기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학생은 논제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사유의 과정과 제시문에 대한 분석의 과정을 소홀히 한 결과 삶과 죽음의 상관 관계 - 삶과 죽음이 ‘여행’이라는 공통 속성으로 연결되어 있음 - 를 파악하지 못하고 삶과 죽음을 따로 떼어내어, 삶에 대해서는 ‘①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죽음에 대해서는 ‘②죽음에 연연하지 않는다’라는 피상적인 접근에 그치고 있다. 그래서 다소 우스꽝스럽고 황당한 진술로 평가위원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ㆍ그리고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기술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③죽어서까지도 화자의 충성은 계속될 것이다’는 엉뚱한 결론으로 한바탕 웃음판을 만들고 있다. 실제 이 학생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학생들이, 성삼문이 사육신이라는 생각에 집착하여 이 시가 단종에 대한 충성심을 노래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답안을 작성하는 바람에 논점을 일탈하고 마는 것이다. 

ㆍ특히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에 급급하여 답안을 하나의 완성된 글로 구성하지 못하고 떠오르는 대로 마구 써 내려가거나 추상적인 어휘들을 남발하고, 대책 없는 논리의 비약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삼고 있다.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다 → 중요한 다른 가치가 있다 → 단종에 대한 충성’과 같은 식이다.


위의 문제는 400자 이내의 짧은 분량으로 작성해야 하는 논술이다. 그러나 아무리 짧은 분량이라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잘 조직된 한 편의 완성된 글이 될 수 있도록 글 전체의 구성을 충분히 생각하고 계획하여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또한 주어진 논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충분한 제시문 분석을 통하여  논제에 대한 자신의 명확한 견해를 간명하게 기술하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타당하고 객관적인 논거를 제시하여 평가위원을 논리적으로 설복할 수 있어야 하겠다. 


2007-10-23 오후 1:04:29 / 김병진
©2023 andong.net
2007-10-23 오후 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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