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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재현의 잡감(雜感) - 학교의 불빛
 

하늘에 별이 마치 그물코처럼 떠 있다. 밤 열 한 시가 넘은 시간.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끈적거리는 웃통마저 벗어던지고 베란다로 나가 담배 한 대 빼문다. 일순. 정적을 깨며 아이들이 불빛만으로 지탱되던 네모 상자 속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내가 사는 아파트 한 쪽으로는 여고가 있고 다른 쪽으로는 남고가 있다. 이제 막 야간학습을 마치고 학교 앞에 기다리고 있는 차로 거리로 아이들이 밤늦은 귀가를 한다. 어쩌면 아직 귀가가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별 같은 아이들이다.

김민기는 벌써 30년 전에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만들어 열악한 우리 노동 현실을 고발한 적이 있다. ‘어두운 넓은 세상, 반짝이는 별, 이 밤을 지키는 우리, 힘겨운 공장의 밤...’ 노래극에 나오는 ‘이 세상 어딘가에’라는 노래의 한 소절이다. 공장은 2교대에서 3교대로, 노동시간 단축과 환경개선을 통해 그나마 30년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학교는 점점 더 30년 전의 공장처럼 되어 간다. 이 밤을 지키는 우리...힘겨운 학교의 밤...

공장의 불빛이 사라져도 학교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바늘 코 같은 출세와 신분상승의 길이 저 불빛 속에 있다. 그것이 ‘바늘 코’인 이유는 이렇다. 일류와 이류는 이미 고등학교를 들어오면서 비평준화로 인해 금 그어졌다. 여기가 경북에서도 오지인 안동이니 중앙과 지방의 금도 그어졌다.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밤낮없이 학교의 불빛 속에서 하늘에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 쳐다 볼 겨를도 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그 중의 몇이라도 바늘 코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30년 전 쪽방에서 하루 열여섯 시간 노동으로 겨우 생계를 연명하던 우리나라 노동현실과 지금 저 아이들의 교육현실은 무엇이 다른가? 쉽게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학교가 출세와 입신의 무한 경쟁이 아니라 저마다 평생을 해야 할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가르치는 곳이라면 개중에는 밤늦도록 별을 그리는 아이도 있어야 한다. 별을 헤는 아이도 있어야 한다. 별을 닦아 보겠다고 사다리를 놓는 아이도 있어야 한다. 무수한 별들로 그물을 만들어 구름을 잡는 아이도 있어야 한다.

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던 우리의 누나 형들에게 행복은 없었다. 하루 열여섯 시간 학습노동을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행복은 없다. 더 큰 문제는 하루 열여섯 시간의 학습노동이 삶의 배신으로 다가왔을 때 우리 사회는 이 아이들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학교의 불빛은 공장의 불빛보다 더 슬프다.

* 이 글을 쓴 피재현님은 시인이며, 현재 나섬학교 교사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영남일보 '문화산책'에도 실렸습니다. 


2007-08-27 오전 9:32:12 / 피재현객원기자 (ppppp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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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7 오전 9: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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