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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구나 유랑의 삶, 변강쇠와 옹녀
 
 ▲ 변강쇠와 옹녀 영화 <변강쇠>(1986)의 두 주인공 이대근과 원미경. 
ⓒ 합동영화

변강쇠와 옹녀는 조선 후기에 연행되던 판소리 12마당 중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 횡부가橫負歌)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고전은 멀고 영화는 가깝다.' 두 남녀는 1980년대를 풍미한 에로영화로 먼저 데뷔하는 바람에 판소리가 아니라 영화의 주인공으로 '인구에 회자'된다.
 
에로영화에 절륜한 정력, 혹은 음란무비의 캐릭터로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에게서 무슨 우리 고전서사문학의 냄새 따위를 맡을 겨를은 없다. 나도향의 사실주의 단편 <뽕>이 영화화된 이후, 그게 문예영화가 아니라 에로영화의 원조인 것처럼 이해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가루지기타령은 지금 전하지 않는 판소리 일곱 마당 가운데 유일하게 신재효에 의해 판소리 사설로 정착된 작품이다. 신재효는 성적 표현이 지나치게 비속하였던 기왕의 이야기를 서민적인 냄새가 짙으면서도 차원 높은 문학적 표현으로 개작한 <변강쇠가>를 남겼다.

에로영화 <변강쇠>, 원래는 판소리
 
<변강쇠가>는 그가 지은 판소리 사설 여섯 마당 가운데 가장 이색적인 것으로 적나라한 성 묘사와 노골적 음담이 전편에 깔려 있는 외설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음란한 성에 대한 경계'라는 형식이 에워싸고 있는 이야기의 내부에 감추어진 것은 하층 유랑민의 비극적 생활상 등의 사회적 현실이다.
 
우선 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쫓아가 보자. 천하 잡놈인 강쇠는 삼남에서 북쪽으로 올라오고, 팔자에 과부 운명인 옹녀는 평안도 월경촌(月景村)에서 쫓겨나 남쪽으로 내려간다. 두 사람은 개성으로 넘어오는 길목인 청석관에서 만나 즉시 부부가 된다.
 
강쇠와 옹녀는 혼인 후에도 유랑을 계속한다. 옹녀는 생활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지만, 강쇠는 노름과 유흥만 일삼는다. 결국 이들은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정착하게 된다. 지리산에 와서도 강쇠는 무위도식을 계속하다가 옹녀의 바가지에 떠밀려 나무하러 집을 나선다.
 
그러나 강쇠는 산에 가서 나무는 않고 소일만 하다가 밤이 들어서야 장승을 패가지고 돌아온다. 그걸로 군불을 때고 자다가 강쇠는 장승 동티(動土 :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려 그것을 관장하는 지신의 노여움을 사서 받게 되는 재앙)로 죽어버린다.

 ▲ <변강쇠>(1986) 영화 포스터 
ⓒ 합동영화

주인공이 죽었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 옹녀는 죽은 강쇠의 장례를 치러야 한다. 치상(治喪)을 위해 옹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도화색(桃花色) 두 뺨 가에 눈물 흔적 더 예쁜' 옹녀에 홀려 치상을 돕고 옹녀와 같이 살려고 달려든 인물들은 초상살(初喪煞)을 맞아 차례로 죽어간다.

맨 처음 지나가던 중은 시체에서 나오는 독기인 초상살을 맞고 죽어버린다. 이어서 유랑 광대패인 초라니와 풍각쟁이들이 나타나서 강쇠의 시체를 묻으려다가 역시 초상살을 맞고 차례로 죽어 넘어진다. 마지막으로 마종(馬從, 말 부리는 하인) 뎁득이가 각설이패의 도움을 받아 시체를 나르던 중, 시체들과 사람들이 함께 땅에 붙어버린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옹좌수가 굿판을 벌이자, 땅에 붙었던 사람들이 땅에서 떨어진다. 마지막까지 강쇠의 시체가 등에 가로 붙어서 애를 먹던 뎁득이도 시체를 떼어내고는 옹녀 곁을 떠나버린다. 노래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경계다.

이 사설 들었으면 징계가 될 듯하니 좌상에 모인 손님 노인은 백년향수, 소년은 청춘불로 수부귀다남자(壽富貴多男子)에 성세태평하옵소서. 덩지 덩지. 
 - 성두본 <변강쇠가> 중에서(이하 같음.)

외설스런 가락, 하지만 음란하지는 않은
 
<변강쇠가>는 전체적으로 외설스러운 가락을 지니긴 했으나 그 전체 내용을 음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노래가 발군의 성(性) 문학으로 불리는 것은 전적으로 작품 앞부분에 나오는 '기물타령(奇物打令)' 덕분이다. 놀라운 상상력과 다양한 비유로 남녀의 성기를 묘사하는 이 부분은 유랑민들의 현실적 욕구를 교묘히 묶어놓고 있다.
 
천생음골(天生陰骨) 강쇠놈이 여인의 양각(陽脚) 번쩍 들고 옥문관(玉門關)을 굽어보며,
"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히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 소나기를 맞았던지 언덕 깊게 패였다. 콩밭 팥밭 지났는지 돔부꽃이 비치었다. 도끼날을 맞았든지 금 바르게 터져 있다. 생수처(生水處) 옥답(沃畓)인지 물이 항상 고여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옴질옴질 하고 있노.
 
천리행룡(千里行龍, 멀리 뻗어간 산맥) 내려오다 주먹바위 신통(神通)하다. 만경창파(萬頃蒼波) 조개인지 혀를 삐쭘 빼었으며 임실(任實) 곶감 먹었는지 곶감씨가 장물(臟物)이요, 만첩산중(萬疊山中) 으름(으름덩굴의 열매)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연계탕(軟鷄湯)을 먹었는지 닭의 벼슬 비치었다. 파명당(破明堂, 무덤을 파서 옮김)을 하였는지 더운 김이 그저 난다. 제 무엇이 즐거워서 반쯤 웃어 두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연계 있고, 제사상은 걱정 없다."
 
저 여인 살짝 웃으며 갚음을 하느라고 강쇠 기물 가리키며,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이도 생겼네. 전배사령(前陪使令, 벼슬아치를 인도하는 사령) 서려는지 쌍걸낭(큰주머니)을 느직하게 달고, 오군문(五軍門) 군뇌(軍牢, 군에서 죄인을 다루는 병졸)던가 복덕이(갓)를 붉게 쓰고 냇물가에 물방안지 떨구덩떨구덩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털고삐를 둘렀구나.
 
감기를 얻었던지 맑은 코는 무슨 일인고. 성정(性情)도 혹독(酷毒)하다, 화 곧 나면 눈물난다. 어린아이 병일는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사에 쓴 숭어인지 꼬챙이 구멍이 그저 있다. 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린다. 소년인사 다 배웠다,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굿대인지 검붉기는 무슨 일인고. 칠팔월 알밤인지 두 쪽이 한데 붙어 있다. 물방아, 절굿대며 쇠고삐, 걸낭 등물 세간살이 걱정 없네."
 
여성의 성기를 바라보면서 제사상 걱정을 덜고, 남자의 그것을 노래하면서는 세간 걱정을 덜었다는 이 진술에 담긴 해학은 절묘하다. 이는 이 기물들이 가진 원초적 생산성에 대한 비틀린 찬양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성과 관련된 내용은 여기가 절정이다. 뒤이어 이야기는 유랑민들의 삶의 문제로 나아간다.

 ▲ 변강쇠 성문화 설치물 함양군에서 지리산조망공원 안에 설치한 목조 조형물. 함양군은 변강쇠전의 배경이 함양군 휴천면과 마천면의 경계인 오도재 일대라고 밝히고 있다. 
ⓒ 함양군청

강쇠와 옹녀, 천하의 잡놈과 잡년의 야합과 외설을 통해 '육욕에 대한 탐닉과 그 응보'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변강쇠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유랑민들의 삶이다. 천하의 잡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강쇠와 옹녀도 유랑민이다. 이들은 정착하기를 강력히 원하지만 결국 좌절하고 만다.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유랑민들 역시 정착생활에 실패하고 마는 건 마찬가지다.
 
노랫말 : '육욕에 대한 탐닉'보다는 유랑민 삶에 주목해야
 
<변강쇠가>에 등장하는 유랑민은 중, 초라니, 풍각쟁이, 마종, 각설이, 사당패 들이다. 이들은 조선 후기의 최하층 유랑민들이다. 이들이 강쇠의 치상을 도와주면 같이 살겠다는 옹녀의 제의에 반색하는 것은 단순히 성(性)에 대한 욕망에서가 아니라 정착생활에 대한 욕구 탓으로 봐야 한다.
 
남편의 치상을 도운 이와 살겠다는 옹녀의 제안이 시사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개가 금지'의 중세 유교 질서에 대한 거부와 풍자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 후기 상민과 천민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개가의 풍습과 문란한 성행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 작품이 겉으로는 매우 희극적으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비극적 구조를 감추고 있다고 평가되는 이유도 등장인물들의 떠도는 삶 때문이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떠돌이지만 그 '떠돎'은 풍류가 아니라 삶의 터전을 잃고 살아나가기 위한 불가피한 '유랑'이다. 게다가 이들은 작품의 진행에 따라 죽어버리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비극적 삶의 종말은 희극적으로 표현된다. 작품의 비극적 구조가 희극적 요소로 덧씌워져 있는 것이다.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가 희극적으로 나타나는 까닭은 작품 속의 유랑 광대패가 청중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비참하고 불행한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희극적으로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강쇠와 옹녀가 에로영화의 단골 캐릭터로 등장하는 주된 이유는 <변강쇠타령>이 유랑민들의 비극적 생활상을 희극적으로 형상화한 덕분이다. 조선 후기 중세봉건사회의 질곡을 감당해야 했던 하층 유랑민들의 삶과 비극이 이 21세기 포르노그래피 덕분에 잊힌 셈이다.
 
이들 주인공들이 21세기에 기려지는 방식도 다분히 선정적이다. 그들은 문학의 주인공보다는 여전히 성적 캐릭터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그것을 통해 지역의 관광수입을 증대하고자 하는 지자체에 고전 주인공들의 출신지는 흥미로운 관심사다. 변강쇠 역시 예외가 아니다.

 ▲ 장승들 경남 함양군에서는 변강쇠와 옹녀가 산 곳이 함양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지리산조망공원 안에 '변강쇠 성문화 설치사업'을 완료했다. 

'변강쇠 타령' 제대로 이해하려면
 
도회살림을 거두고 지리산 밑으로 돌아온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곳이 경남 함양이라는 사실을 예의 자치단체에서 입증해 낸 모양이다. 함양군에서는 성두본 <변강쇠가>를 분석하여 이들이 살았던 곳이 함양군 휴천면과 마천면의 경계인 오도재 일대라고 밝혔다.
 
작품에 등장하는 '누백년 도깨비 동청'과 '묏귀신의 사랑'은 오도재의 산신각이고, 변강쇠가 나무를 하러 가면서 나무꾼들을 만난 '등구 마천 백모촌'도 함양이라는 것이다. 특히 백모촌은 마천면 백무동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변강쇠가 나무를 하러 가서 뽑아 온 장승도 나중에 '경상도 함양군에 산로(山路) 지킨 장승'으로 밝혀지는데 이 역시 지리산 가는 길을 지키는 장승이라는 것이다. 이 호재를 놓칠세라 함양군은 지난해 10월, 지리산 가는 길로 유명한 오도재 정상의 지리산조망공원에 변강쇠 성문화 설치사업을 완료했다고 한다.
 
거기에 지리산 제일문을 비롯해 김종직, 정여창 등을 비롯한 조선시대 최고 시인들의 시비 15점을 다양한 형태로 조각해 세우고, '변강쇠전을 모티브로 해서 다양한 성기와 성행위 장면을 익살스럽고 해학적으로 표현해 지리산에서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색적인 볼거리'에 관광객들은 흥미를 갖겠지만, 그게 변강쇠타령 등의 우리 고전문학에 대한 이해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갖가지 성기로 치장된 공원 풍경에서 '육욕에 대한 탐닉과 그 응보'도, '하층 유랑민의 고달픈 삶'도 찾기 어려울 터이니 말이다. 그나마 함양군이 변강쇠전을 '인문학적으로 소중한 함양군의 지적 재산'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 장호철 객원기자는 현재 안동여고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09-03-31 오전 10:12:57 / 장호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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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31 오전 10: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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