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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부자
 

대학 시절 어느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부부는 젊은 시절에는 애인, 중년에는 친구, 노년에는 간호사가 됩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는 말씀이다. 요즘 나도 아내와의 사이를 친구라고 하는 것이 좋을 정도가 되었으니까. 물론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호르몬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남성 호르몬이 남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성 호르몬이 여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자에게도 여성 호르몬이 있고, 여자에게도 남성 호르몬이 있지만, 남자에게는 남성 호르몬이, 여자에게는 여성호르몬이 주된 역할을 함으로써 각각의 성적 특성을 나타낸다. 그런데 중년에 접어들면서 주된 호르몬의 분비가 감소한다. 그래서 남자도 여자도 조금씩 중화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생물학적 변화가 심리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일컬어 갱년기 증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당연히 이런 중성화 현상은 성적 호기심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30대 후반이라면 아이들이 없을 때 “애들도 없는데 오늘?” 하면서 침대를 보겠지만 40대 후반쯤 되면 “애들도 없는데 오늘?” 다음에 오는 말은 “맥주나 한잔 할까?”가 되기 십상이다. 물론 성적 호기심의 감퇴를 상대방의 탓으로 여겨 다른 섹시한 이성을 찾는 사람들도 제법 있지만 그런 사람들도 대개는 방황하다 결국 자신의 문제임을 자각하게끔 되어있다.

사회생활이나 취미생활에서도 이런 현상은 나타난다. 드라마만 열심히 보던 부인이 어느 날부터 정치 뉴스나 다큐멘터리로 관심을 옮기고, 정치적 현안에 민감해지기도 한다. 수줍어서 반찬 흥정도 잘 못 하던 새댁이 통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당연히 남자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중성화 현상이 나타난다. 무성하던 종아리 털이 듬성듬성해진 어느 날인가부터 아이들에게조차 말발이 밀리고, 부인의 관심을 받고싶어 하기도 한다.

남자의 중성화 특징 중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대표적인 것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화분을 사가지고 와서는 매일 지극정성으로 물을 주고, 꽃이 피었네, 어제보다 많이 컸네 하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밖으로 돌던 남편이 이런 증상을 보이면 중성화의 신호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고 한다. 이 때 부인이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면 거의 집에 주저앉는다고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춘기 청소년처럼 밖에서 방황하게 된다. 섹시한 이성을 찾아(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마음 맞는 친구를 찾아, 혹은 둘 다를 찾아서. “갱년기에 바람난다.”란 말이 다 생물학적 근거를 가진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주말 일과가 고정되어버렸다. 일요일 늦잠자기, 아버지 면회(이제 갈 일이 없어졌지만), 바둑 두기, 집안 닦기(이것만 하면 두 끼 밥을 먹는데 문제가 없다), 그래도 심심하면 책읽기, 그리고 화분에 물주기.

안동에 올 즈음인 40대 초반부터였던 것 같다. 집에 두 개의 화분이 생겼다. 마누라가 산 동백 화분, 처가에서 얻어온 군자란. 최근까지 마누라는 화분에 물을 주는 법이 없었다.  결국 마음 약한 내가 말려죽일 수는 없어 주말에 한번씩 물을 주게 되었고. 그러던 것이 화분이 차츰 늘었다. 지난해까지 내가 돈을 주고 산 화분은 없었다. 다들 얻어오거나 마누라가 아파트 근처 노점상에서 한 개씩 사는 것들이었다. 물론 사온 사람이 화분에 물을 주는 법은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면서 나름대로의 배짱이 생겼다. “일주일에 물 한 번 먹고 사는 놈은 살고, 그 물 먹고 못 사는 놈은 우리 집에는 못 사는 거지 뭐.” 그런데 일주일에 물을 한번 주니 말라서 죽거나 물이 많아 죽는 화분은 없었다. 단 한 화분이 말라서 거의 죽을 뻔했는데 한 줄기가 살아남아 현재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그 후 살아나온 줄기들은 일주일에 한 번의 물에 잘 적응하고 있다.

3년 전 추위에 고무나무와 몇 개의 화분이 얼어 죽었다. 그 후론 겨울이 되면 화분을 베란다에서 거실로 옮기는 성의를 보였다. 작년 봄엔 처음으로 분갈이를 했다. 올핸 기어이 분갈이를 위해 빈 화분 한 개를 사고, 분갈이용 흙도 샀다. 그리고 화분 수가 많아져 주말에 화분에 물을 주거나 관리하는 시간이 제법 된다. 흙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까워서 요즘은 집에서 배양토를 만들고 있다. 스티로폼 박스에 흙을 채워두고 나뭇잎 같은 것들을 잘라서 그 안에서 썩힌다. 최근엔 과일 껍질을 묻어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일주일이면 흔적도 없이 썩어 흙이 되어버린다. 당연히 냄새도 나지 않는다. 처음엔 냄새난다고 말리던 마누라도 요즘은 못 본 척 한다.

그럭저럭 큰 화분 열 개 정도에 작은 화분 열 개 전후로 늘어나 제법 재미가 붙을 즈음인 올 여름에 우리 집 화분 붐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 생겼다. 앞집은 베란다를 통째로 예쁜 정원으로 만들 정도로 화초를 잘 관리하는 집이었다. 특히 다육식물과 야생화를 주 종목으로 해서 잘 가꾸었는데 가끔 몇 포기씩 얻어오기도 했다. 이 집이 이사를 가면서 큰 화분 세 개와 큼지막한 바위 두 개를 주고 갔다. 마누라는 처음엔 큰 바위 위의 넝쿨 식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후회를 하더니 바위가 멋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용기를 내어 꾸미기 시작했다. 그 바위의 넝쿨을 치우고 이끼를 깐다, 꽃집에서 이런저런 식물을 사다가 바위 위에 심는다, 기왓장을 사와서 화분을 만든다, 이끼를 구해온다, 등등 거금 5만원 정도를 들이고 며칠을 베란다에서 살더니 바위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놓았다.

문제는 그 와중에 화분이 40개가 넘어가게 되었고, 평소엔 화분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여자가 수시로 베란다를 들락거리며 물을 준다, 옮겨 심는다, 손가락으로 눌러 균형을 잡는다, 가지를 자른다, 등등 계속 손을 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이끼에만 물을 주고 손을 대지 말라고 말렸지만 보면 손을 대고 싶은 모양이다. 요즘 마누라가 화분을 보고 있으면 신경이 쓰인다. ‘저 여자가 또 무슨 저지레를 할라카노?’ 아이들이 고2, 고3이 되면서 통제 밖으로 나가고 나니 뭔가 돌봐야 할 대상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기존의 이론이 무너진 사건이다. 화분에 대한 관심은 남자가 중성화되는 신호여야 하는데 마누라가 갑자기 화분에 관심을 나타내니 기존 이론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갑자기 화분이 거의 배로 늘어나니 베란다가 그득한 것이 부자가 된 기분이다. 남들 눈에는 너절한 화분들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사랑스런 놈들이다. 재산도 이렇게 팍팍 늘어나주면 사는 재미가 두 배가 될 텐데 아쉽다. 작은 화분들 중 상당수는 남들에게 분양을 해주기 위한 화분들이다. 이름도 잘 모르는 화분을 받아갈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마음은 여유롭다. 요즘 마누라는 베란다에 화단을 만들자고 나선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제발 참아주세요.  

 >> 마누라를 원예게에 입문시킨 문제의 바위
     - 이 바위 들 수 있으면 이삿짐 센터 취직은 문제없다.




 >> 함께따라온 납작한 모양의 바위 
      - 위에서 자세히 보면 한반도 모양이다.


 >> 아저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요즘 홀대를 받고 있는 큰 화분들



 >> 전체 모습

 >> 여기다 화단을 만들자고 한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2009-07-16 오전 11:28:51 / 김중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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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6 오전 11: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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