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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의 한가운데
 

직장에서 감염관리실장 직책을 맡고 있다. 법으로 병원에는 감염대책위원회와 감염관리실을 두게 되어있는데 대학병원에서는 대개 감염내과 전문의가 감염관리실장을 맡지만 아직 감염내과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어쩔 수없이 내가 맡고 있는 것이다. 감염관리실장이라고 해봐야 실무자들은 달리 있고 가끔 결재 서류를 들고 오면 사인을 하고, 몇 마디 묻고 의견을 말하는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었다.

신종 독감으로 인해 두 사람의 사망자가 생겨난 후 신종 독감은 전국적 관심사가 되었다. 지난 금요일엔 새로운 지침이 전국의 의사들에게 전달되었다. 그전까지는 유입 단계로 해외로부터의 유입을 차단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새로운 지침은 확산단계로 보고 대량 확산을 막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이다. 그전까지는 신종 독감이 의심되는 환자가 발견되면 보건소에 신고하고 보건소에서 검체를 채취해 전문기관에서 검사를 실시하고 격리하는 정책이었는데 이젠 그런 개별관리가 효용이 없다고 보고 치료거점병원을 지정해 그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대량으로 환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이다. 확산의 속도를 늦추면 백신을 개발해 사람들이 면역을 가지도록 하는 시간을 벌 수가 있다. 만약 환자가 더 많아지면 지금의 지침도 개정되어 의심되는 환자가 발생하면 등 일반적인 계절형 독감처럼 관리하게 될 수도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미 대유행 단계로 선언하고 환자 발생 집계를 중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신종 독감은 그 독성이 기존의 계절형 독감에 비해 그리 큰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RNA 바이러스인 A형 독감은 복제를 할 때 분절되어 복제된 후 다시 합쳐지는 형태로 증식하기 때문에 유전적 변이가 잘 일어나는 바이러스라 독성에 변화가 올 수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까지의 독성이 다른 독감에 비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화요일 질병관리본부 주관으로 전국 치료거점병원 병원장 회의가 있었다. 갑자기 치료거점병원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에 정책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자리로 생각된다. 대개 대형 병원에서는 병원장 대신 감염관리 담당자가 참석하게 된다. 그날 모인 어느 감염관리 전문가가 지금의 질병관리본부 정책 방향이 옳다고 평가하는 것을 들었다. 내 생각에도 지금의 정책 방향이 옳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런 정책들이 지침으로 만들어져 전달되는 과정에서 일선의 의료인들에 따라 조금씩 다른 뉘앙스로 전달되는 경우도 있어 약간의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더군다나 불안한 일반 시민들과 만나서 진료를 하다보면 더욱 큰 혼란을 겪기도 한다. 신문에서 의원급에선 검사가 힘들어 감기와도 혼동한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는데 대학병원에 가더라도 처음 절차는 동일하다.

예를 들면 현재 37.8도 이상의 열이 나면서 기침, 인후통, 콧물 중 한 가지 증상이 있으면 의사가 환자의 상황에 따라 신종 독감 가능성을 판단하게 되는데 일반 감기나 계절형 독감도 이런 증상을 보일 수 있다. 이런 증상을 보인 환자 중에 신종 독감이 의심되면 입원 치료를 할지 외래 치료를 할지 결정한다. 외래 환자인 경우 고위험군(5세 미만의 소아, 임산부, 각종 해당 질환 등)은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하고 그렇지 않으면 일반 계절형 독감과 마찬가지로 대증요법을 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외래 진료를 하는 환자는 확진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고위험군 중 꼭 필요한 경우에는 확진검사를 할 수도 있다.

이런 정책은 환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불안을 느낄 수 있다. 외래 진료를 받고 고위험군이 아니더라도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전염병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보면 제한된 약을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투약하게 되면 꼭 필요한 환자가 복용할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고, 항바이러스제도 내성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남용으로 인해 항바이러스제에 내성을 가진 바이러스가 출현하게 되면 고위험군이 투약을 받더라도 위험할 수 있어 항바이러스제의 사용을 통제해야 한다. 그런데 일선 의사 입장에서는 “만약 내가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라고 따지면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럼 약을 처방하거나, 확진검사가 필요하지 않은 환자일지라도 확진검사를 해보고 결정하자고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외래 환자는 신종 독감으로 의심이 되더라도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 개정된 원칙이지만 고위험군은 꼭 필요하다면 검사를 할 수도 있다. 조건에 맞는 사람은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설명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자부담으로 확진검사를 하고싶어 하는 사람일지라도 원하는 대로 모두 확진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검사 기관에서 업무가 폭주하거나, 검사 시약이나 재료가 동이 나서 꼭 필요한 검사가 밀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내 돈 들여 검사를 하겠다는데도 당신이 검사를 만류하니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당신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하면 마음이 약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치료거점병원으로 지정되면 격리 병실과 환자를 분류할 수 있는 독립된 외래 진료 시설이 필요하다. 다행히 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병실, 분류시설 모두를 독립된 공간에 확보할 수 있지만 이런 공간이 없어 컨테이너를 사서 시설을 마련하는 병원도 있다고 들었다. 공간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시설에 근무할 의사, 간호사 등의 의료 인력도 확보해야 한다. 두 직종 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직종이 아니다. 의사만 구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요즘 간호 인력난으로 인해 간호사 구하기도 아주 어렵다. 간담회에서도 간호사 부족이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인력만 확보하면 이 업무에 투입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의사든 간호사든 신종 독감의 독성이 계절형 독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크게 겁을 내어 기피하는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수요일 직장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그 중 한 가지가 분류소에서 열이 나서 오는 환자를 분류하는 일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보통 내과 의사와 소아과 의사가 하게 되는데 내과의 경우 대부분 예약 환자로 이루어져 있어 당장 일손을 빼내기 힘들다. 내과 내에서 순번을 짜기 전까지는 하루 이틀은 내가 그 일을 맡기로 했다. 뭐, 그럼 내가 하지. 그런데 저녁 회의 때 원장님의 말이 달라진다. 당분간 계속 맡아달라고 한다. 쩝, 그러지 뭐. 그럼 내가 평소에 해야 하는 일은? 늦게 퇴근하는 수밖에 없다. 토요일 휴무일인데 그날은 누가 대신 봐줄라나? 아마 이번 토요일은 근무하라고 할 거야. 신종 독감이 사람 잡네.

그러다 신종 독감에 걸리면 어쩌냐고? 그럼 덕분에 (규정에 따라) 어디 1주일 틀어박혀 쉬는 거지. 신종 독감 너 까불지 마. 너의 전성시대도 길어봐야 1년을 넘지 못할 테니.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2009-09-03 오전 10:25:13 / 김종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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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3 오전 10: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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