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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이야기 - 천혜의 자연환경과 전통문화가 함께하는 산운마을
 

천혜의 자연환경과 전통문화가 함께하는 산운마을

<산운마을 전경 ; 사진제공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옛 조문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경덕왕릉 사적지와 문익점 면작 기념비를 지나면 금성산이 나타난다. 금성산은 가마와 비슷하다고 하여 가마산이라고도 부른다. 내륙분지에 솟아 있는 조그마한 산으로, 한반도 최초의 사화산이다.

백악기에 화산이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때문에 정상에 1,000여 평의 평지가 남아 있다. 화산 폭발의 흔적인 정상의 평지는 천하 제일의 명당자리로서 이곳에 조상묘를 쓰면 당대의 만석꾼이 되지만 주변 지역은 3년 동안 가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래서인지 의성에 가뭄이 들면 군민들은 가장먼저 이곳을 찾아와 땅을 파헤쳤다고 한다. 지금도 주민들이 남몰래 땅을 파헤친 흔적이 곳곳에 있다.

이곳 금성산 자락 수정계곡 아래 상서로운 구름이 감돈다는 산운(山雲)마을이 있다. 산운생태공원의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전통가옥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산운마을 뒤로 현대 농촌의 전원 풍경이 펼쳐져 있어 사촌마을과는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산운생태공원 ; 사진제공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450여년전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이 처가곳인 이곳으로 입향하여 민홍(民宖), 민성(民宬), 민환(民?) 삼형제를 낳았고 이들이 정착하여 일파를 이루면서 영천이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지금은 산운마을은 마을사람이 벼슬에 급제하면 심었다는 회나무가 집집마다 우거져 있고 점우당(漸于堂), 소우당(素于堂), 운곡당(雲谷堂), 학록정사(鶴麓精舍) 등의 문화재가 있어 대감마을이라고도 불린다.

- 산운마을권역 -

▼ 수정사와 대곡사

*수정사

 <수정사 대웅전 ; 사진제공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박은진 학예사> 

수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1592년(선조 25)에는 사명대사가 이곳에 머물며 왜군을 격퇴한 바 있다. 1835년(헌종 1) 불이 나서 대광전만 남기고 모두 불에 탄 것을 뒤에 중창과 중건을 거듭하여 1993년에는 주지 총혜(聰惠)스님이 명부전과 범종각을 새로 짓고 산신각과 설선당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근처에 유정이 왜군과 싸우던 금성산성(金城山城)이 있는데, 이 산성은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 당시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인근에 조문국의 마지막 왕인 경덕왕릉 사적지와 1935년에 세운 문익점 면작기념비, 그리고 산운마을이 있다.

* 대곡사

 <대곡사 전경 ; 사진제공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대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1368년(고려 공민왕 17) 인도 승려 지공(指空)과 혜근(惠勤)이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대국사(大國寺)라 하였는데, 이는 지공이 원과 고려 두 나라를 다니면서 불법을 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불에 탄 것을 1605년(선조 38)에 중창하였다. 1687년(숙종 13) 태전(太顚)이 중건하면서 절 이름을 현재의 대곡사로 바꾸었다. 대웅전은 경북 문화재자료 제160호이며 명부전과 범종각은 함께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1호로 지정된 맞배지붕 건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부터 누군가의 입에서부터 이곳 대곡사가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파되기 시작했는데, 1975년 이전 주경야독을 하며 고시공부를 하던 때, 이곳 대곡사를 찾아와 약 20일 동안 공부를 하며 머물렀었다고 하여 더 유명해진 곳이다.

▼ 빙계계곡

<빙계계곡의 풍혈 ; 사진제공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국립공원인 빙계계곡은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워 경북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계곡이라고 하면 아름다운 산이 있고 계곡이 있는 정도로만 알겠지만 이곳은 여덟 곳의 이름난 빙계8경이 있다. 빙계8경은 계곡 입구에서부터 용추(龍湫)·물레방아(水礁)·바람구멍(風穴)·어진바위(仁巖)·의각(義閣)·석탑(石塔)·얼음구멍(氷穴)·부처막(佛頂)이다. 용추는 빙계계곡 물에 패인 웅덩이이고, 물레방아는 주민들이 계곡물을 이용하여 방아를 찧던 것이다. 풍혈과 빙혈은 바위틈에 난 구멍인데, 한여름에는 얼음이 얼어 영하 4도를 유지하고 겨울에는 영상 3도를 유지해 훈훈한 바람이 불어 나온다. 인암은 정오가 되면 ‘仁’자 모양의 그늘이 생긴다는 바위이고, 의각은 윤은보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각이다. 부처막은 빙산 꼭대기에 움푹 패인 곳으로 부처와 용이 싸울 때 생긴 것이라고 한다.

<빙계서원 전경 ; 사진제공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박은진학예사> 

빙계계곡 안에는 빙계서원이 있다. 빙계서원은 1556년(명종 1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안국(金安國)·이언적(李彦迪)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장천(長川) 위에 세웠다가  1576년(선조 9) 사액(賜額)을 받아 지방 인재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1600년(선조 33) 산운마을 영천이씨 입향조인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이 춘산면 빙계리(氷溪里) 빙산 사구터에 이건(移建)하면서 빙계서원으로 개칭하였다. 1689년(숙종 15)에 김성일(金誠一)·유성룡(柳成龍)·장현광(張顯光)을 추향(追享)하여 오현(五賢)으로 모시고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거되었고, 주춧돌만 남아 있었다. 최근에 새로 빙계서원을 복원하고 서원 이건에 공이 큰 학동 이광준을 함께 모셔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경덕왕릉 사적지

금성면 대리리·학미리·탑리리 일대에는 경상북도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된 ‘의성 금성산 고분군’이 200여 기가 있다. 특히, 대리리의 40여 고분 가운데에 조문국 경덕왕릉이라고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조문국은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였던 조문국(召文國)을 말한다.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를 도읍지로 하여 존속하다가 185년(신라 벌휴왕 2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전한다.

조문국이 실재했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짧게 언급되어 있을 뿐 문헌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960년부터 발굴작업이 이루어져 현재에 왔다. 토기, 금동관, 장신구, 철제무기, 마구류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나 국립대구박물관과 경북대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어 이곳에서는 볼 수 없다. 인근에 현재 조문국박물관이 건립중이며 앞으로 의성과 조문국에 관련된 것들을 이곳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사촌마을 주변권은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과 선비문화에 대한 체험을, 산운마을 주변권은 생태와 환경에 관한 체험을 추천한다. 그밖의 문의는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로...

혹시 시간이 된다면 의성읍내 소재 의성향교 앞에 위치한 성광산업을 둘러보자. 성광산업은 우리나라 성냥공장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작은 전시관도 만들어놓고 있다.

 <성광산업 전경 ; 사진제공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박은진학예사>
  <성냥 만드는 기계 ; 사진제공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박은진학예사>


2010-04-07 오후 5:02:39 / 경북미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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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7 오후 5: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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