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넷 | 맛있는집 | 문화관광 | 엔터테인먼트 | 포토팟 | 커뮤니티
뉴스 인터뷰/기고 칼럼 유쾌한 스토리 포토/만평 기사검색 기사제보/취재요청
아나키스트가 본 세상
한방칼럼
배옥의 고향편지
도연의 문화산책
안동의 인물
피재현의 雜感
이 풍진 세상
안동에 사노라면
음식문화지도
포토벨
> 안동뉴스 > 칼럼 > 배옥의 고향편지
 
애기무덤에 얽힌 이야기
민섬에 갖힌 애기 울음 소리가 이명으로 남아
 

마흔해 쑥대머리

총각으로 살다가

분내 고운 곱사등이 처녀에게 장가간

삼봉이,

등 굽은 내림

울음 잃은 핏덩이.

 
고운 황토 마다고

칼 돌 덮고 돌아선 아비

다음 생 너는 아비 나는 자식으로 살자.

칼바람

헤집고 도는

눈 내리는 등성이.

 
밟지 마.

밟지 마.

그곳만은 밟지 마.

펑펑 울다 지친 乳腺유선 애기 입으로 흐른다.

아비 눈

돌이 되다 만

마른 초유 걸렸다.

 (졸저 애기무덤 전문)

 

내 사랑 투(Tu), 그리운 당신에게

 내 유년의 기억 속에는 마당 넓은 초가집을 두고 다 자란 키 큰 미루나무집이 살아있습니다.

흙으로 쌓아올린 담장 한 귀퉁이가 모진 비에 무너져 내리면서 마당이 아이들 놀이터가 되어버린 마당 넓은 집이 있었죠.

무너진 울타리에 어느 날 미루나무 씨앗이 날아와 앉더니 쑥쑥 자라 키 작은 아이들보다 높이 자라 아이들의 놀이터 술래 기둥이 되어주기도 하고 그늘이 되어 주기도 하던 참 참하던 나무였죠.

 원래 마당 넓은 집은 하천 부지였습니다.

해방이 되고 만주에서 돌아온 아이 할아버지가 고향 하천 부지에다 집을 짓고 살면서 마당 한 켠에는 늙은 감나무가 세 들어 살았고 키 큰 닭장도 입주해 있었습니다.

예순의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열 뙈기도 넘는 다락 밭의 둑을 내려 하나로 묶는 일에 열중하셨습니다.

목수일을 하는 아버지는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며 너른 마당에 벽돌공장을 지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 놀던 흙 고운 마당은 시멘트 콘크리트가 깔렸고, 잘 찍어둔 벽돌이 가득 마당을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터는 강변이나 앞산자락으로 옮겨졌고 오래지 않아 아버지의 무허가 벽돌공장은 샘 많은 이웃의 신고로 문을 닫아야 했죠.

시멘트 블록이 있던 자리에는 세 칸짜리 벽돌집이 지어졌고 아이가 살던 집도 초가집을 허물고 시멘트 불록 집으로 새로 지어졌습니다.

세 칸짜리 띠 집에는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가던 이웃집 총각이 분내 고운 곱사등이 처녀를 아낙으로 맞이하면서 신접살림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알콩달콩 참 예쁘게 살던 이웃에게 경사가 생겼습니다. 곱사등이 분내 고운 새댁이 아이를 가졌습니다. 온 동네가 내일마냥 기뻐해주고 축하해 주었죠.

그러나 달이 차서 낳은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죠.

온 동네가 침묵에 잠기던 날 아이는 앞산자락에 칼 돌을 무덤을 삼아 하늘로 올랐습니다. 며칠을 농주만 마시며 울던 아이 아빠는 어느 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곱사등이 아내와 집을 버리고 어디론가 이사를 떠났습니다.

애기 무덤이 있는 앞 산자락에서 전쟁놀이를 하던 아이들도 아이가 혼자 외로울까 무덤 옆에서 ‘와~ 와~’ 소리를 지르며 놀았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아이들이 모두 떠나간 아이는 홀로 울고 있을 테죠?

임하댐으로 지금 민섬(호수가 만들어지면서 생겨난 섬)이 되어 더욱 외로울 애기무덤 속 아이는 얼마나 외로울까요?

가슴에 아이를 묻은 아이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요?

오늘은 유년의 내 기억 속에 잠들어 있는 아이 울음소리가 이명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배옥 자유기고가, 시조시인.


2007-07-31 오전 11:12:22 / 배옥객원기자 (bhg5646@naver.com)
©2023 andong.net
2007-07-31 오전 11:12:22



| 독자의견 - 총 0 건의 독자의견이 있습니다.

성명 비밀번호
자동입력방지
72898
좌측 박스안의 숫자를 입력하세요.


이메일 인쇄 퍼가기 글자크게 글자작게
 
안동넷 경북 안동시 단원로 89 4층 로그인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서인
전화 : 054-843-5700, 054-856-5544, 팩스: 054-843-5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