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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형에게(권정생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L형에게

L형
권정생 선생께서 끝내 운명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전날 천상병 시인에게 범했던 어리석음을 다시 한 번 범하는 것 같아 못내 가슴이 아팠소.

벌써 2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미아리 텍사스촌이 훤히 보이는 골목 끝 다쓰러져 가는 공방에서 10년 선배와 함께 금속공예라는 너무나 과분한 일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L형은 내게 ‘평생 망치 한번 쥐어보지 못한 놈이 하다하다 할 짓이 없으니 이젠 망치질까지 하겠냐! 며 혼을 내셨죠? 그래도 그 시절에는 그 방법 외에는 이 지긋한 안동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물 몇 살, 1년 6개월의 단기 사병으로 군 생활을 마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대학 다니는 내내 학과 수업보다는 연극에 미쳐 살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울에 있는 기성극단을 찾아 다시 처음부터 연극 생활을 할 엄두도 나지 않았지요. 차라리 그때 대학로를 찾아 연극을 했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된 일은 밤 아홉시 열시가 넘어서는 것이 보통이었고 일을 마치면 선배와 나는 미아리 꽃동네 한복판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를 찾아 식어버린 어묵국물을 사이에 두고 소주를 몇 병씩 잡고 몸을 눕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일한 낙은 아침 공방 문을 열면 골목 앞을 지나는 아름다운 소녀를 보는 낙과 주말이면 헌책방을 뒤져 쓸 만한 책을 골라 밤을 새워 읽던 즐거움이었습니다.

헌책방을 뒤지던 내게 천상병 시인의 산문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는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군사정권시절 인혁당 사건에 얽힌 선생이 모처에 끌려가 고문을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량리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아픔을 겪었지요. 그리고 친구 여동생인 목순옥 여사를 만나 수락산 기슭에서 비로소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시절에 내놓은 산문집이라 어찌나 반가운지 한달음에 책을 읽고 책장을 덮으려 한때 선생이 책 뒤표지 즈음에 주소와 연락처를 남기고 누구든 놀러 오라고 남기셨죠. 그 때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문학도도 아닌 내가 선생님을 찾아 간다는 것도 우스웠고 얼치기 독자라고 하기에도 부족함이 많았지요.

참 많은 고민 끝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고 선생님께서 참 흔쾌하고 찾아 오라셨습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 때의 즐거움은 이루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 말미에 선생님이 농담 같은 한마디만 빼면 말입니다. “예쁜 색시 있으면 같이 오라시던, 혼자 올 것 같으면 오지 말라”시던, 물론 장난이셨죠. 같이 가겠다고 큰소리는 했는데, 원래 여자 친구가 없었던 숙맥이 갑자기 여자를 구할 수가 있어야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도 같이 가겠다던 사람을 못  구했죠. 며칠이 지나고 포기하려고 할 즈음, 대학 동기 한명이 같이 가겠노라고 하고 선생님께 시간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같이 가겠다는 동기가 갑자기 일이 생겨 못가겠다고 통보해왔습니다. 결국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약속도 못 드리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펑크 내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안동으로 내려와 작은 신문사에 근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문화부기자가 권정생 선생을 찾아 인터뷰를 하겠다고 해서 따라나섰습니다.
기사를 포함해 네 명인가 같이 산보를 겸해 나섰죠. 일직 어디쯤으로 기억이 납니다. 낡았지만 정갈한 일자형 슬레트 집, 선생의 방은 좁았습니다. 네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생각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다 인사도 못 드리고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 아주 오랫동안 선생이 계시던 집 근처를 지나면서 들러서 인사드릴까 고민만 하다 그냥 지나쳤죠. 물론 저 같은 사람을 아실 턱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선생께서 운명하셨습니다. 물론 천상병시인이나 권정생선생님은 저를 알지 못합니다. 제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두 어른을 보내면서 찾아뵈옵고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사조차 드리지 못한 기억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습니다.

L형, 주말에는 선생께서 사시던 댁에 찾아가 볼까 합니다.
마음으로나마 그렇게 생전에 인사 여쭙지 못한 마음을 털어놓고 오렵니다.


 배옥 올림

*배옥 자유기고가, 시조시인.


2007-06-05 오전 9:40:26 / 배옥객원기자
©2023 andong.net
2007-06-05 오전 9: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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