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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
 

몇 주째 새 글을 올리지 않으니 몇몇 분께서 걱정 혹은 힐난을 한다. 너무 무심했나? 사실 오늘 낮까지 올릴 소재가 있었는데 그건 어느 지인의 체면과도 관계가 있어 함부로 올리지는 못하고 준비가 필요하다. 한잔하고 온 새벽, 떠오르는 생각을 급히 올린다. 블로그도 끄달림이다.

성인이 된 후 만난 사람에게는 거의 반말을 하지 않는다. 갓 졸업하고 입사한, 부모님 중 한 분이 나와 동갑인, 20대 중반의 직원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쓴다. 중, 고등학교 후배, 대학 후배에게도 원칙적으로 그 후배가 성인이 된 후 만난 경우에는 존댓말을 쓴다. 전 직장에 있을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입사한 여성 직원 둘이 있었는데 약 3년간 반말을 한 일이 있다. 하지만 그 직원들과 동갑내기들이 다른 직종으로 입사할 때가 되면서 말투를 바꾸었다.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조금만 지나니 문제가 없었고 그 두 직원은 아주 좋아하는 눈치였다. 이런 습관은 대학 초기에 어느 선배의 말을 듣고 생겼다. 그 선배의 설명에 의하면 1, 2년 후배에게 반말을 하고, 1, 2년 선배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쓰는 것은 일제의 잔재라고 했다. 전통적인 향리에서는 몇 년 차이는 친구로 지냈고, 개화기 신학문을 할 때도 선배가 후배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는 법은 없었다고 했다. 옳은 이야기로 들렸다.

사실 어릴 때 아버지에게도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자작농으로 빈농을 겨우 면한 할아버지의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아버지는 그 동네의 유일한 양반인 지주의 눈에 든 모양이다. 그 지주의 지시(?)로 아버지는 소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 가기 전 그 지주네에 가서 한문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 오래 공부할 기회는 없었지만 천자문을 떼고 동몽선습 정도는 공부를 한 모양이다.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인이 최 귀하니 그 귀한 바는 오륜이 있음으로서다.’로 시작되는 동몽선습은 아버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책이었다. 어릴 때부터 사귀어 온 40년 지기 친구가 있다. 평소에는 전화조차 자주 없지만 어려울 땐 가장 먼저 찾는 친구다. 어릴 적 그 친구를 데리고 오면 아버지는 “부모를 팔아서 친구를 산다.”고 이야기하며 그 친구와 나를 앞에 놓고 동몽선습을 기준으로 ‘출필고 반필면’에서 시작되는 인간관계를 교육하셨다. 그때 선후배 관계에 대해서는 “다섯 살 차이까지는 친구로, 다섯 살에서 열 살 차이는 형님으로, 열 살 이상 차이는 부모와 같이 대접하라”고 교육 받았다.

그랬다. 향리에서 한 또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동갑내기로는 부족하다. 아래위로 몇 살 정도는 같은 또래의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성장한 후 향리를 떠나 만난 관계는 친해지기 전까지는 몇 살 아래라고 하더라고 존댓말을 썼다. 친해진 후에는 몇 살 차이 정도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개화기까지 이런 모습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런 관계가 깨어진 것은 일제의 군국주의 교육제도가 도입된 후였다. 군대에서 계급과 입대 순서에 의해 이루어지는 상명하복은 학교에도 교련을 통해 도입되었고 그것이 해방 후에도 이어져 이제는 마치 우리 문화의 본래적 모습처럼 되어버렸다. 외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도 우리나라 선후배 관계라고 한다.   

성인이 된 후 만난 관계는 후배라도 반말을 하지 않는 원칙이 있지만 반드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선배가 존댓말을 쓰면 견디지 못하는 후배도 있다. 이런 후배는 내가 존댓말을 쓸 때는 관계가 서먹한 것으로 이해하고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말을 세 번쯤 들으면 나도 말투를 바꾸어 반말을 한다. 술김에 반말을 하기로 약속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말에 책임을 져야하므로 다음에 만날 때부터 반말을 하기도 한다. 대학 초기에 만나 반말을 하던 1년 후배가 있는가 하면 대학 중반기 후에 만난 후배는 몇 년 후배인데도 존댓말을 쓰기도 한다. 동갑내기와는 서로 쉽게 말을 트는 편이다. 나이가 많은 경우엔 마음편하게 존댓말을 쓰지만 한 살 정도는 간혹 말을 트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한편 몇 살 위의 사람에게 쉽게 반말을 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말이 묘해서 반말을 하게 되면 상대방을 억누르려는 경향이 있다. 반말을 하는 사람이 존댓말을 하는 사람에게 권위적이 될 요소가 많다고 생각한다. 몇 살 위의 사람을 만날 때 친해지면 말을 낮춰도 괜찮다고 몇 차례 말을 하긴 한다. 상대방이 섭섭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 후로 계속 말을 높이면 더 이상 권하진 않는다. 말투로 인해 불필요한 권위를 꼭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다. 전번 직장에 있을 때의 일이다. 새로 기관장이 부임해왔는데 10여년 이상 연상인 분이었다. 당시 나는 나이는 어리지만 직제상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그 기관장을 견제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새로 부임한 기관장이 내게 조금씩 반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날 말을 돌려 이야기했다. “전임 기관장께서 제게 말씀을 낮추려고 하시기에 나이로 보거나 서열로 보면 당연히 그렇게 하셔도 되지만 제가 기관장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시면 제가 브레이크 역할을 하기 힘듭니다라고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 그 후 그분은 내게 깍듯하게 존댓말을 썼다.  

서로 존댓말을 쓰는 관계가 친해질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문제가 없다. 마음이 통하는 관계라면 서로 존댓말을 쓰면서도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퇴계와 고봉이 많은 나이차를 넘어서 편지로 교유를 했다는데 둘이 대면했을 경우 퇴계가 고봉에게 반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2009-06-18 오전 10:08:51 / 김종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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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8 오전 10: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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