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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무현 전대통령께
 

어제, 시간으로 따지면 그저께가 되네요. 시내에 세워진 당신을 추모하는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분향을 했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향로에 향이 너무 많이 꽂혔고 담배도 너무 많아 그냥 잠깐의 묵념과 절을 하고는 물러났습니다. 오늘(시간상으로는 어제) 저녁 지인들과 함께 당신의 분향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소주 한잔을 하고 돌아와 이 글을 적습니다. 요즘 당신에 대한 글을 적는 것이 시류에 편승하는 것 같기도 해 주저하고 있는데 어느 분이 당신에 대한 제 개인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하더군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당신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할 생각을 굳혔습니다. 십여 년 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약자로는 ‘아미자’라는 책이 유행했지요. 지금은 그 책의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전 다른 의미로 당신의 죽음을 ‘아미자’라고 명명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대신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아니라 ‘아무나 마구 미워한 자(아무에게나 마구 미움을 받던 자)의 죽음’이겠지요.  

어제 조문도 분향도 아닌 어정쩡한 참배를 한 후 물러나니 방명록이 있었습니다. 방명록이 있을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딱히 적을 말을 생각한 것은 아니어서 무슨 말을 적을까 잠시 망설이다. “잘 기억하겠습니다.”란 말을 적고는 물러났습니다. 적고 나니 무엇을 기억하겠다는 것인지 반문이 생겼습니다. 전 과연 무엇을 기억하겠다는 것이었을까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당신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겠습니다.

인권변호사 시절의 당신의 모습을 언뜻언뜻 언론에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당시의 기사로 본 것이 아니라 나중에 인권변호사 시절의 모습을 보도한 기사의 기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5공 청문회 때 당신이 스타가 되었다고 했는데 사실 그 당시 전 그 청문회를 자세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명패를 던졌다는 기사를 본 기억은 나지만 당시 제 생각은 그런 행동을 이해는 하지만 국회의원의 행동으로는 적절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 후 3당 합당 때 당신이 합당을 거부하고 야당으로 잔류할 때부터 당신에게 본격적이 호감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역시 노무현이다. 마음에 들어. 그리고 그 후 당선이 보장된 서울을 버리고 부산에서 계속 출마하며 지조를 지키는 당신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사모’에 가입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사실 전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노사모’라는 조직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거의 8년 정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 전화를 받았습니다. 차기 대통령으로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유명 정치인의 이름이 나왔지만 지지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일곱 번째인가 여덟 번째인가에 당신의 이름이 나와서 당신의 이름이 나온 번호를 눌렀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대통령 후보로서의 당신의 지지도는 한 자리 수에서도 낮은 숫자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후 몇 차례의 기적같은 반전을 거듭한 후 당신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당신이 이기던 날 저와 아내도 축배를 들었습니다. 당선자 시절 어느 선배와 만난 자리에서 전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정세를 분석할 힘은 없지만 정치권 안에 지지자는 적고 적대적인 정치인은 많은 상황에서 과연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표현은 저답게 어떻게 돕거나 반대하거나 하는 것이 아닌 방관자의 입장으로 한 말이었지요. 그리고 말이 씨가 되었는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신은 국회의 탄핵을 받았습니다. 민주당까지 탄핵에 가세한 데는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앙금이 원인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이 지역주의 타파라는 당신의 정치적 목표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훨씬 뒤에야 알았습니다.

탄핵 정국에서 전 제법 열이 받았습니다. 어지간하면 현안에 대해 말을 할 용기를 내지 않는 편인데 현안에 관한 두 편의 글을 적었습니다. (한 편은 나중에 비공개인지, 통하는 사람만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인지 읽기를 제한했지만요.) 그리고 안동에 온 후 처음으로 탄핵반대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아마도 당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어렵게 만든 절차적 민주주의를 짓밟는 것에 대한 울분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한 글에서 아옌데를 당신과 비교했더랬지요. 명확한 쿠데타군인 피노체트의 군에 맞서, 모든 직원을 대통령궁에서 내보내고 총 한 자루로 그들과 맞선 아옌데는 싸울 대상이라도 있었고 멋이라도 있었지만 당신은 의회에서의 탄핵이라는 참으로 난감한 처지에 빠진 것이지요. 당시 저는 ‘아옌데 당신은 차라리 행복했습니다.’라고 적은 것 같습니다.

탄핵의 고비를 넘기고 그 영향으로 ‘탄돌이’들이 많이 생겨 정국이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루었을 때부터 전 당신에게 냉담해진 것 같습니다. 어제(시간으로는 그저께), 제가 속한 단체의 성명서들을 훑어보았는데 전 당신이 관할하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선언문에 세 번 제 이름을 올렸더군요. 한 번은 이라크 파병 반대, 두 번은 의료 개방과 관련된 정책에 대한 반대였습니다. 지금 다시 당신이 살아와 다시 대통령이 되어 같은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전 역시 반대 선언문에 이름을 올릴 것입니다.

그 후 당신에 대한 저의 태도는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했지요. 대구, 경북에서 살아가는 제 주위에는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들만 있는 듯했습니다. 동의할 수 없는 이유로 당신을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당신을 변호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많은 정책들은 옹호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선 대통령으로서 그런 정책밖에 펼칠 수 없을 것이란 점을 이해하면서도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성질의 정책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임기말에서 퇴임 직후 당신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제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그래도 역대 대통령 중에서 내가 가장 덜 싫어하는 대통령” 정도였지요.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싫어하는, 아니 미워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았지요. 당신에 대한 심한 호감과 비호감은 아마도 여러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에 대해 분석을 하고 나름의 분석 결과를 언급하고 있지요. 저도 이유를 짐작해봅니다. 고집스럽게 정치적 정도를 걸어가면서 호감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얻은 반면, 기존의 질서, 특히 지역에 기반한 정치 질서에 반하는 당신의 모습이 싫은 사람들도 생겨났겠지요. 대통령까지 되고 나니 출신에 따라 올라갈 수 있는 한계를 정해두고 싶은 엘리트들 눈에는 당신이 많이 거슬렸겠지요. 그러나 엘리트들이 그래서 싫고 밉다고 하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니 당신을 싫어해야 하는 이러저러한 명분을 만들었겠지요. 그리고 매체를 이용해 그런 명분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학습시키고요. 이런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정리가 되네요. 분명한 것은 당신이 변호사로 적당히 살았더라면 아마도 '개천에서 용이 난' 실례로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제가 남들 앞에서 당당히 밝힐 수 있는 당신의 공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당선되기 전 한국에서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달성되었지만 사회 전반의 권위주의가 해체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정치 권력 주변에 만연해있던 반민주적 권위주의의 해체를 시도한 첫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이 땅의 민주주의에서 큰 획을 그은 분임을 확신합니다. 당신이 추구한 지역주의 타파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어느 때인가 당신의 그 이상을 높이 평가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대북관계에 있어서도 김대중 정부를 이은 당신의 정책들은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대북정책과 비교할 때 어느 쪽이 진정한 실용정책에 가까웠던 것인지는 역사가 평가할 것입니다. 공개적인 글로 밝힐 수 없지만 당신의 재임 기간 중 이룬 노인 관련 정책 덕에 저희 가족은 약간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글에서 본 말 대로 당신의 ‘이번 선택’은 지지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뭘 기억해야 할지를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당신의 정치적 이상, 권위주의 타파라는 당신이 일부 실천했던 민주주의의 과제를 잘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리되진 않지만 당신과 관련해 기억해야 할 몇 가지가 더 있을 것 같습니다. 양심, 인권, 정의, 권력, 기득권, 엘리트 집단 ……


2009-05-28 오전 10:08:41 / 김종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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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8 오전 10: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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