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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벨 - 사진 빛의 세기를 열다
 

2009년 여름이 끝날 무렵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20세기 사진의 거장 전’이라는 주제로 사진전이 열렸다.

20세기 초에 주도적인 시각예술매체로 부상한 ‘사진’이라는 기술은 유럽의 예술가들을 매료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들은 사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였고, 사진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했으며, 순수한 빛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사진이야말로 그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환경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가장 적합하고 전위적인 매체라고 믿었다. 그 시대에 실험 정신으로 이루어진 매력적인 시도들은 이제 모든 분야의 사진 적 표준으로 자리 잡았으며, 현대적 시각 언어의 기본적인 문법이 되었다.

 >>지엔씨미디어  2009

신수진

연세대학교 인지연구소에 재직 중인 사진심리학자.
빛으로 경험할 수 있는 순수한 시각적 즐거움에 매료되어 어린 시절부터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

복합과학인 심리학과 사진 예술을 접목시켜서 국내 최초의 사진 관련 박사가 되었으며, 현재 교수, 연구자, 평론가, 전시기획자, 이미지 컨설턴트 등의 일인다역으로 심리학적 아이디어를 통해 사진을 해석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빛의 세기를 열다』는 ‘파리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라 불리는, 이들의 주요 작품과 함께 설명이 실려 있다.

『빛의 세기를 열다』는 앙드레 케르테츠의 사진과 내용을 많이 소개 하고 싶은 필자의 욕심 때문에 2회에 걸쳐 소개될 예정인데, 1회는 파리 아방가르드의 핵심적인 예술가로서 활동한 앙드레 케르테츠의 주요 작품들과 설명을 소개하고, 2회에는 만 레이, 완다 율츠 등 나머지 작가들의 작품과 설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앙드레 케르테츠 (1912-1984)
파리 아방가르드의 핵심적인 예술가로서, 젊은 시절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휴대용 카메라를  혁신적으로 사용한 선구자였다. 즐겁고 명상적인 순간의 미묘한 이미지들을 담았던 그의 사진은 초상에서부터 정물, 왜곡된 누드, 보도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며,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순간뿐 아니라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포착했다. 70여 년간 소형 카메라를 이용하는 겸손한 자세로 작가 활동을 했으며, 브랏사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베르 두아노 등에게 훌륭한 동료이자 스승이었다. 특히 현대 사진의 거장으로 잘 알려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케르테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리가 해 온 것은 모두 다 케르테츠가 처음으로 했던 것이다.

 >> 퐁 데 자르 - 프랑스 학사원 벽시계 유리를 통해 바라본 루브르 박물관, 1932
카메라로부터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대상이 한꺼번에 화면에 들어간 중첩된 이미지를 보여 준다.

전통이 살아 있는 루브르 박물관을 가로막고 있는 시계는 마치 역사를 움직이는 법칙처럼 보이기도 하고, 기계 문명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견고한 틀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계 바늘과 숫자판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길 위의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에서는 밀도 있는 긴장감과 여백의 대비를 만들어 내는 시각적 요소로만 보인다.

주인공은 모호해졌고 그 대신에 메시지가 생겨난 것이다. 이렇듯 아방가르드 사지나들은 사진을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각이 자신의 작품에 담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포킵시, 뉴욕, 1937

밝은 곳과 어두운 곳, 움직이는 것과 고정된것의 대비를 통해 완전한 균형미를 보여 주었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어두운 계단과 흰 지붕이나 트랙이 강한 대비를 이루면서 근대 도시 건축의 역동성이 잘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그저 다른 사람을 지나쳐 가거나, 허공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거나, 비껴서있다. 이러한 그들의 움직임은 사진 속에 담기는 순간 절묘하게 고정됨으로써, 불안정하고 취약한 인간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인간을 둘러싼 건축물의 짜임새가 상대적으로 더 치밀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장면에서 유일하게 건축물을 이용하는 거주자로서 주체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흰 옷을 입고 참을성 없이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뿐이데, 그마저도 등을 돌린 모습인 것이 인상적이다.



 >> 우울한 튤립, 1939
형태의 왜곡을 통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사체에 예기치 못했던 감성을 담아내었다.

뿌리를 떠난 꽃은 잠시 동안만 싱싱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지 않은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화병에 꽃을 꽂는다. 하지만 고개를 들고 있는 꽃만이 화병에 남아 있을 자격이 있다는 상식은 케르테츠의 사진에서 편견이 되었다.

극적으로 구부려져서 아래로 향한 꽃봉오리는 여전히 싱싱하다. 이 튤립은 다만 우울한 것뿐이다.











 >> 우스꽝스러운 무희, 파리, 1926

당시의 예술가들이 얼마나 새로운 형태에 몰두했는가를 보여 준다.

무희 마그다 푀르스터를 모델로 조 각가 뵈티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이 사진에는 좌측 후면에 보이는 조각상에 표현된 역동적으로 비틀린 자세와 그것을 모방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기록되었다. 인물의 형태를 왜곡시키기 위한 어떠한 장치도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무희가 마치 조각상이 좌대에 놓인 듯 의자 위에 배치되어 심하게 뒤틀리고 변형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카메라의 높이만 낮추어도 형태는 다르게 읽힌다.

 

 

 >> 몬드리안의 집, 파리, 1926

미국의 아방가르드 사진을 이끈 알프레드 스티그리츠의 ‘삼등선실’ 과 함께 근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곤 하는 이 사진은 삼차원 공간을 이차원 평면에 옮겨놓기 때문에 공간감에 따라 다른 힘을 가진다.

 >> 파리 근교 뫼동, 1928

공간은 움직임을 만나서 생명을 얻었다. 낡은 건물과 공사 중인 고가 철로가 만들어 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행인과 기차는 잠시 동안 짧은 균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

신문지에 싼 캔버스를 들고 가는 예술가와 위쪽에 고가 철로를 달리며 연기를 뿜는 기차의 만남은 사진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순간의 절묘한 균형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 시대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 아틀리에의 피에트 몬드리안, 1926

케르테츠의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성찰적 면모와 몬드리안의 본질을 따르는 순수함과 완벽함을 모두 보여 주고 있다. 1920년대 파리에 모여든 유럽의 예술가들은 사교적인 만남을 통해 예술적 고만과 실천들을 공유하였다.

아방가르드는 프랑스어로 군대 중에서도 맨 앞에 서서 가는 ‘선발대’를 일컫는 말이다. 아방가르드는 단어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에서 예술, 문화 혹은 정치에서 새로운 경향이나 운동을 선보인 작품이나 사람을 칭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한국어에서는 전위로 번역되어 전위예술, 전위음악, 전위재즈와 같은 낱말에서 쓰인다. 대개 아방가르드는 문화적 맥락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경계를 허무는 표현의 일종이다. 어떤 이들은 아방가르드가 모더니즘의 상징적 요소라고 생각하며 포스트모더니즘과 구분하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아방가르드가 모더니즘 시대가 아닌 지금에 와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양식이라고 지적하는 탓이다.

2011-04-04 오전 10:26:25 / 권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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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오전 10: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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