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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손길의 금속공예가 김기덕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관광 상품을 만들어 안동을 알리고 있는  사람, 은공예 전문가 김기덕씨를 만나봤다.

지역에서 은공예(금속공예)를 한다고 하면 낯설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희소성을 가진 직업이다. 언제부터 이 일을 하게 되었는가?
어릴 적엔 그다지 이런 쪽으로 두각을 드러내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다. 단지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이 환경정리 벽에 자주 걸리거나 하는 정도? 사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산업디자인학과에 대해 잘 모른 채로였고, 처음엔 도자기공예를 전공했었다.
그 당시 열심히 하던 동기들 몇몇들이 모여서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었다. 나 역시 그때 금속공예를 부전공처럼 하다가 자연스레 전공을 바꾸게 된 것인데, 적성에 맞았던지 장학금도 받았을 정도였다(멋쩍은 웃음)

도자기공예나 금속공예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을 것 같은데, 비교해본다면?
 각자 취향의 차이기 때문에 둘 중에서 우위를 가리기엔 뭣하고, 음..,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도자기는 어릴 적부터 찰흙 빚기 등 많이 접할 기회가 있어서일까 접근하기가 쉽고, 그 매력에 금방 빠져들게 한다. 대신에 주로 흙으로만 작업을 하다 보니 단순하게 여겨 질 수도 있는 것 같다.
 반면에 금속공예의 경우 일반 사람들이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분야인데다가, 용접을 한다든가, 불을 이용한다든가 하는 작업 과정 때문에, 미리 겁을 내거나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의외로 쉽고, 또 금속뿐만 아니라 보석, 흙, 나무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접목시킬 수 있어 창작의 범위가 상당하다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몇 년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시 안동으로 오게 된 계기가 있는가?

91년 즈음 서울에서 마음 맞는 몇 명이 모여 수공예악세사리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멤버 중 친한 선배가 있어 나에게도 합류할 것을 권유하면서 본격적으로 은공예를 시작하게 됐다. 에피소드를 하나 말한다면, 처음 시작할 때는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백화점 같은 곳을 찾아가면 문전박대를 당했었다. 그래서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 끝에 생각해낸 것이 ‘이목을 끌기 위해 독특하게 디자인한 꽃마차를 끌고 대학로로 나가자’였는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장신구 쪽이 원래 그런 것처럼 우리 역시 입소문이 돌면서 금방 판매율과 가치가 올라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백화점에서 우리를 찾을 정도였다.(웃음) 
그렇게 7년 남짓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98년 안동에 그 업체 지점을 내면서 내려왔다가 이듬해인 99년에 독립을 해서 아트 쥬얼리 ‘eveart’라는 이름을 내걸고 창업을 하게 된 것이다.

각종 공모전에서의 수상 경력이 화려하던데?
혹자들은 나더러 ‘공모전 킬러’또는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표현도 쓰는데, 사실 썩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작품을 낼 때는 수상에 관심을 둔 적이 별로 없다. 수상소식도 나중에 주최 측에서 확인 전화를 할 때 알 정도다. 물론 수상 경력 덕에 더 많이 알려진 점도 있긴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단지 이쪽 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출품을 하는 편인데, 우연히도 낼 때마다 성적이 좋다보니 남들 눈에는 오해로 비치는 것 같다

2005년도에는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는데, 상금도 많았는가?(웃음)
상금은 일천만원이었고,(멋쩍은 웃음) 대신에 생산장려금 차원의 지원금이 나오는데, 그 걸로 기계나 재료를 사거나 했다. 내 경우는 매년 각종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편이라 그 것을 자주 활용하는 편이였지만, 그런데 그 지원금이 지속적인 게 아니라 그 당해에만 나오는 것이라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든가 하는 것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경북의 경우는 다른 지역보다도 그 지원이 빈약한 편이다.



세공 쪽은 섬세한 잔손질이 많은 가는 분야인데, 평상시 성격도 그러한가?
은공예 쪽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 할 때는 집중력과 섬세함을 요하는 편이다. 더구나 주문 물량이 많고, 주문 날짜가 임박해오면 나도 모르게 그 일에 몰입하다보니 날을 꼬박 세우는 경우도 허다한 편이다.
그런데 일할 때만 그렇고, 평상시에는 그와 반대로 너무 털털하다보니 신경을 써야 할 부분도 잘 모르고 놓칠 때가 많다.(웃음)

우연히도 안동넷이 만난 사람들 중에 절반 이상이 솔로이다.(웃음) 눈이 높아서 짝을 못 찾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건 아니고,(멋쩍은 웃음) 한창 사업이 번창할 땐 너무 바빠서, 요즘처럼 사업이 주춤할 땐 또 그만큼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하다 보니, 사실 시간적으로나 심정적으로 누구를 만날 여유가 없었다.
 
결혼 적령기가 많이 지났다보니 가족들이 보내는 눈초리가 따가울 것 같은데, 어떤가?
의외로 그렇지 않다. 물론 속으로야 얼른 장가를 가서 가정을 꾸리길 바라시겠지만, 그렇다고 눈총을 주면서 채근하시거나 그러시지 않는다.
나 역시 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결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하지도 않다. 또한 어쩌다가 인연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아이를 낳아 키우기엔 나이가 많이 늦은 탓에, 둘이서 각자 삶에 충실하면서 친구같이 살고 싶다.

얼마 전에 안동댐 천연염색전시관 작업실을 새로 열었는데,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어서인가?
지역에서 아직까지 은공예업을 하는 이가 극소수인데다가 영세하다보니, 우리끼리 판로를 개척해나가는 것이 많이 힘들다. 무엇보다 생소한 분야를 대중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후배 양성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새롭게 작업실을 낸 것도 그 일환으로 사람들에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은공예에 관심 있는 이들을 전문가로 키워내고 싶은 마음에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로는 은공예분야를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고, 후배를 양성해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싶다. 그것 말고는 앞으로 시일이 많이 걸리겠지만, 음... 각양각색의 재료를 활용하고, 접합시킨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큰 디자인회사를 만드는 것이 내 꿈인데, 그러기위해서는 현재 생활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멋쩍은 웃음)


2007-11-07 오전 10:18:38 / 황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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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7 오전 10: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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